에쎄 담배와 요맘때 아이스크림
사람들이 교사를 생각하면 보통 떠올리는 것이 안정성이다. 나 역시 무난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왔다. (엄연히 무난하고 안정적이라는 것의 기준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내 기준 무난하고 안정적이라는 것은 적어도 경찰서에서 나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정 가까운 시각에 경찰서에서 급히 전화가 온다니,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것도 실종수사팀이었다. 그 아이는 성로원에서 지내는 아이인데, 부모를 만나러 간 것일까. 친구랑 놀다가 성로원에 들어가지 않은 것일까. 가출을 한 것일까. 어디서 지금 밤을 보낼까.
불안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성로원 선생님 그리고 실종수사팀과 통화한 후 그나마 아이와 친했던 아이들에게 아이의 행방을 캐물었다. 결국 친구와 늦게 까지 놀고 들어가지 않으려 했던 작은 소동으로 끝이 났다. 물론 그 과정에서 3일 정도 실종 수사 대작전을 펼치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지겹게 연락한 끝에 그 아이는 성로원을 가출한 와중 나를 만나주었다. 한 손에는 에쎄 담배를, 다른 한 손에는 내가 사준 요맘때 아이스크림을 들고 그간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성로원에서는 자신을 문제아 취급한다는 것이다. 성로원의 다른 친구와 갈등을 겪고 분한 마음에 가출을 실행에 옮긴 아이의 행동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결국 교장선생님과 성로원, 그리고 담임인 나와 인성부장님의 상담 끝에 아이는 무사히 성로원으로 돌아갔다.
일단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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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고 치열했던 첫 해가 끝나고, 나는 2년차 교사가 되었고 그 아이는 입시를 준비했다. 그 아이의 말을 빌리자면 '좆같이 살기 싫'었기 때문이었을까, 흔히 말하는 동네 일진이었던 그 아이는 공부에 매진했다. 3학년이 되어서는 위탁학원에서 가서 요리를 배웠고, 지방 사립대에 합격했다.
나와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많이 좋아져서 다행이라며, 부모와의 관계도 어느정도 회복되고 진로도 찾아서 정말 다행이라며 웃었다. 그렇게 아이는 졸업했고, 우리는 학교에 남았다.
늘 그렇듯 아이가 지나간 소동의 자리는 고요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새싹 같이 더 어린 아이들이 물 밀듯 밀려왔다.
그렇게 나는 3년차 교사가 되었고, 2025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그 아이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