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없는 2월의 학교는 묘한 긴장감으로 팽팽히 부풀어 있다.
발령교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내 발령교는 면소재지였다. 학교 바로 앞에는 양식장이 있었고, 뒤에는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바다는 생각보다 가까웠고, 생각보다 조용했다. 드넓은 수평선은 없었지만, 대신 비릿한 바람이 '여기가 네 자리'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토록 보고 싶던 바다를 이런 방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내 첫 신규 발령교는 흐리지만 푸른 바다의 빛으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비록 '면민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의 형태였지만 말이다.
엄마의 배웅을 뒤로 하고 발을 내딛은 학교 운동장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겨울이었지만 깨끗하게 관리되어있는 연못 위 다리를 건너 교무실을 찾았다. 평소 생각했던 교무실 그리고 내가 학창시절 동안 봐왔던 교무실과는 사뭇 다른, 긴 직사각형 형태의 교무실은 낯섦 그 자체였다. 마치 누군가의 세계 속으로 무방비하게 초대된 느낌이었다. 양쪽으로 길게 부서의 자리가 위치해 있고 한 가운데 길이 나 있는 그 구조는 교무실의 문을 처음 연 나로 하여금 마치 레드카펫을 걷는 느낌을 주었다. 영광스럽다기보다는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한번에 받는 듯해서 두 뺨이 붉어지는 기분이었다. 왜 그 레드카펫 같은 복도가 그토록 부끄러웠는지. 모든 시선이 나를 지나가는 것만 같아 숨이 가빴다.
조심스럽게 미닫이 문을 열고 기웃거리니, 교무실 중간 자리에 위치한 중년 남성분이 나를 맞이해 주셨다. 그분은 교감선생님이셨는데, 잘 왔다며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것이 무척이나 감사했다.
"고향이 어디에요?"
"저는 대구에서 왔습니다."
"아이구 멀리서 왔네, 어떻게 여기까지 왔대. 집은 구했어요? 이 근처는 집 구하기도 어려운데, 정 못 구하면 기숙사에서 좀 지내도 돼요."
교감선생님과 나눈 첫 대화였다. 학교가 면에 있어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바다 시골 마을의 학교에 내가 근무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곧 교감선생님께서는 부장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다. 그분은 맑은 목소리, 아름다운 웃음을 지닌 분이셨다. 상냥하게 맞이해 주는 모습에 긴장하고 얼었던 2월의 작은 마음이 녹았다. 당시만 해도 알지 못했다. 발령이 유배가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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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3월에 개학하지만, 진정한 시작은 2월의 새학기 워크숍으로 시작된다. 교사는 대부분 방학 때 출근을 하지 않고 41조 연수라는 제도를 통해 자택 혹은 생활 근거지에서 교재 연구 및 연수 활동을 하며 방학을 보낸다. 그런 교사가 3월을 준비하기 위해 2월 중순 이후에 이틀 혹은 사흘 정도 출근하여 교과 협의와 부서 협의를 통해 한 학기를 계획하는 것이 바로 새학기 워크숍이다. 교과 협의는 내가 담당하게 될 과목과 학년 그리고 시수를 정하는 예민한 부분이고, 부서 협의는 업무분장을 통해 나의 업무를 명확히 하며 부서 간 조율을 하는 일이다. 그래서 학생이 없는 2월의 학교는 고요하지만 묘한 긴장감으로 팽팽히 부풀어 있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니 일 내 일을 담판짓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교과 협의회의 분위기는 다정함과 어색함 그 사이였다. 모두가 친절하며 배려하는 사이였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의견을 내기 어려웠다. 사실상 신규였던 내 업무는 이미 정해진 것에 불과했다. 선택권은 없었다. 물론 발령 받은 것만으로 정신이 없던 나는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그저 주어진 일에 감사할 뿐.
그렇게 나는 2학년 문학과 3학년 언어와 매체 과목을 담당하게 되었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랬다. 2월 중순 이후에 진행된 새학기 워크숍부터 3월 개학 전까지, 수업을 준비하는 기간은 굉장히 촉박하다. 한 교실당 적어도 일주일에 3시간의 진도를 나가기 때문에 개학 전까지 대단원 하나는 학습지와 PPT, 그 외 수업 자료와 활동까지 구상해야 했다.
당시 나는 이사 준비에 급박했으므로 이삿짐 센터 알아보기부터 시작해서 이사, 신규 교사 연수, 수업 준비, 업무 인수인계까지 매우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개학 하루 전날, 함께 진도를 나갈 선생님께 충격적인 전화를 받게 된다.
"선생님... 혹시 잠깐 통화 가능하신가요?"
수화기를 붙잡고 있으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들어야 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마치 첫날부터 일기예보가 빗나간 느낌, 시작도 하기 전에 계획표가 구겨지는 느낌이었다. 내용은 아직 학교에 정식으로 투입되지도 않은 신규 교사였던 내가 들어도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내가 내일부터 담당하게 될 과목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당했으나,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선생님의 그 다음 말이었다.
"사실 부장님께서는 선생님께 말하지 말아달라고 하셨어요. 미리 이야기를 전하면 반발하실까 걱정이신가봐요. 그래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제가 언질을 드렸다는 것은 비밀로 해주세요."
내가 일과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는 아니지만, 충분히 이해는 갔다. 시간표를 계획하는 일을 하는 일과 업무 담당 선생님께서는 교사의 수, 시간강사의 요구 그리고 무엇보다 고교학점제로 인해 시간표 구성에 곤란을 겪는 일이 많다. 그래서 하루 전에 내가 담당하게 될 과목이 바뀌는 것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있으니 받아들이라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반발을 할 경력도 연차도 안되거니와 굳이 안좋은 시선으로 찍히기 싫었으므로 나는 모른 척 웃기를 택했다. 개학 후 부장님께서 나를 조용히 부르셔서 담당 교과 변경에 대한 말씀을 전하셨다. 처음 듣는 척, 괜찮은 척 그렇게 지나갔다. 학교라는 사회에서 엄청나게 큰 일은 아니지만 교사들 사이에서는 조금 예민한 일이 있다.그렇게 나는 그저 다 좋은 척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일은 나의 신규 생활의 불행을 알리는 아주 작은 신호탄일 뿐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몇 주 뒤 교무실 한복판에서 내가 펑펑 울게 되리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