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오류의 날, 나는 조금 부서졌다.
개학 후 첫 달은 바쁘게 지나갔다.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학교의 분위기에 점차 익숙해지며 낯설었던 교실은 이제 나의 일터가 되었다. 3월이 새학기 시작의 달이라면 4월, 벚꽃이 필 즈음은 중간고사의 달이다. 그래서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개화를 기뻐함도 찰나, 낙화와 동시에 중간고사 기간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도 위기이자 시련인 중간고사는 MZ교사인 나를 완전히 절망시키기에 충분했다.
4월 말 혹은 5월 초에 시행되는 중간고사는 각 학교의 학사일정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보통 3주전 출제를 끝내야 한다. 그 뒤는 검토 기간이다. 첫 시험문제 출제인 만큼 나는 심혈을 기울였다. 내가 출제한 스무 개 남짓의 문항으로 아이들의 내신이 결정되고, 그 내신 등급으로 대학에 진학한다니 막중한 책임감이 밀려왔다.
당연히 평가 연수를 들으며 유의점을 몇 번이고 되새겼으나, 막상 시험지 초안을 제출하고 보니 작은 실수 투성이였다. 문항의 정렬이 잘 맞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서 긴 문학지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타가 그것이었다. 편집상의 오류를 점검하고 피드백 받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일머리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여느 교사가 그러하듯 늘 상위권의 성적을 받아왔을 인생에서 이렇게 내 실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수치 그 자체였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
.
.
문이 열려있던 초여름의 복도는 적막했고, 귓가엔 샤프심 긁히는 소리만 잔잔히 퍼져졌다. 교실 밖의 바람은 그날따라 유난히 차갑게 불었다. 내가 담당한 과목의 시험이 이루어지는 당일, 학생들은 내가 출제한 시험지를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마주하고 있었고 나 또한 복도에서 순회를 하며 중간고사 문제지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처음 맡은 시험 출제는 왠지 모르게 진정한 교사가 되는 통과의례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의식을 나름대로 성스럽게 치렀다고 생각했다. 서너 번은 풀어보는 것은 기본이었고, 마지막에는 숨도 참고 문항을 훑어내렸다. 그렇게 완성된 문제지는 신규교사의 작은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어느 객관식 문항에서 내 시선이 멈췄다. 문제는 '<보기>의 ㄱ~ㅁ 중 옳은 것을 모두 고른 것은?'이었다. 그런데 선지에는 그 어떤 번호에도 'ㅁ'이 없었다. 물론 그 자체가 문항 오류는 아니었다. 답은 명확했고, 하나였기에. 다만 'ㅁ'을 선택한 아이가 선지를 보고 다시 '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었으므로 이는 잘못 출제된 문제임은 분명했다.
나는 놀란 마음에 함께 출제한 부장님을 찾았다. 부장님께서는 급한 전화를 받으시느라 마침 복도에 계시지 않았고,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사소한 오류가 곧 재시험으로 이어질까 두려웠던 나는 각 반을 돌아다니며 오류를 정정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뿐이었다. 찬 공기와 함께 얼굴에 뜨겁게 피가 몰렸다. 길고 고요한 복도를 뛰며 한 걸음마다 생각이 쏟아졌다.
"어쩌지, 이걸 정정해야 한다. 왜 지금에서야 알았을까?"
짧은 순간 수십 번의 자책이 내 안에서 울렸다. 전반을 다 돌고 한 숨 돌리고 나니 종이 쳤다. 그리고 나는 교무실로 달려가 부장님을 찾았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장님께서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걸 지금 알았다는 거야? 문항 자체 오류 아니면 그냥 두지 그랬어. 괜히 열심히 푸는 애들 시간만 빼앗고 말이야. 정말... 어이가 없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말은 내 어깨를 단숨히 누르고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내 잘못이니 할 말은 없었다. 어떤 말을 해보려 했으나 변명일 뿐이었다. 겨울 입술을 떼고 '그게 실은...'이라는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아픈 말이 먼저 내 심장을 찔렀다.
"신규 교사가 어디 감히 나한테 와서 이야기도 안 하고 혼자 행동해?"
이미 죄송하다는 말로 거듭된 나의 사죄는 그 높고 날카로운 음성에 묻히고, 다른 분들께 절대 피해가 가지 않게 최대한 책임지겠다는 말은 오만으로 들릴 뿐이었다. 문을 박차고 나간 부장님의 뒤에 나는 우두커니 선 그림자가 되었다. 그날따라 직사각형의 복도는 어둡고 깊은 형무소 같았고, 나는 그 속의 죄인이었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모두 놀라 입을 틀어 막고 나를 지켜보았다.
'괜찮아요?'라는 어느 선생님의 물음에 내 안의 무언가가 구겨진 시험지 마냥 찢어지며 눈물이 쏟아졌다. 조용한 교무실에서 흐르는 울음은 생각보다 더 크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숨을 삼키는 소리마저 죄책감으로 번졌다.
나는 그날 집에 가서 한참을 더 울었다. 실수를 저지른 내가 미웠고, 이곳은 더이상 나를 봐주지 않는 사회라는 사실이 무서웠다. 내 잘못이 용서될 수 있을까 고민했고, 혹여나 들어올 민원을 상상하며 불안에 떨었다.
실수는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잔해는 어쩐지 나를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든다. 그날의 눈물은 부끄러움의 기록이자, 내가 교사로서 처음 맞이한 파도의 기록이었다. 차고 쓴 바닷물에 씻기고,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나는 제자리를 찾았다.
교무실 한복판에서 오열했지만, 그 다음날도 출근을 해야했다.
그리고 다시 불편한 얼굴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 실수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