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도 비정상도 아닌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할까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일은 세상을 0과 1로 변환하는 것과 같다. 세상은 수많은 값들이 흩어져 있는 스펙트럼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실 안에서 아이들을 너무 쉽게 0과 1로 나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규정하는 일은 언제나 가장 조용한 폭력의 형태를 띤다.
학교에서 사람이 나뉘는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대부분의 갈라짐은 나와 다름에서 시작된다. 다르다는 말에는 인종과 성별, 경제적 지위와 종교처럼 수많은 의미가 포함될 수 있지만, 교실에서 가장 먼저 감지되는 다름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영역이다. 몸의 움직임, 말의 속도, 반응의 리듬,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 아이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차이를 감지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곧 답답함이나 이상함이라는 말로 번역된다.
다름의 경계에 선 아이들 가운데 일부는 검사와 절차를 거쳐 경계성 지능이나 지적 장애로 분류된다. 그 경우 학교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다. 특수학급, 개별화 교육, 보조 인력.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름 붙여진 어려움은 제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다. 검사 수치는 기준선을 간발의 차이로 넘기고, 진단명은 붙지 않는다. 그 아이들은 특수학급에도 속하지 않고, 그렇다고 일반 수업을 온전히 따라갈 수도 없다. 제도는 그 아이를 정상 범주에 두지만, 교실은 그렇지 않다. 그곳에서 아이는 늘 한 박자 늦은 사람으로, 도움을 받기엔 애매하고 방치되기엔 너무 눈에 띄는 존재가 된다.
우리 반에도 그런 아이가 있었다. 지능 검사를 받은 적은 있었지만 이미 성장한 이후에 실시된 검사였고, 그 결과 어떤 진단명도 붙지 않았다. 수치는 기준선을 간신히 넘겼고 서류상으로 그 아이는 문제없는 학생이었다. 특수학급 대상도 아니었고 추가 지원을 받을 근거도 없었다. 제도는 그 아이를 정상 범주에 남겨 두었다.
하지만 교실에서의 모습은 달랐다. 수업 내용을 따라오지 못했고, 한 번 설명한 개념은 다음 시간에 다시 처음부터 설명해야 했다. 필기는 늘 비어 있거나 엉뚱한 문장으로 채워졌고, 수행평가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제출 기한을 넘기기 일쑤였다. 시험 시간에는 문제를 읽다 말고 멍하니 종이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다.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더 어려운 것은 교우관계였다. 대화의 맥을 놓치고,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거나 진담을 농담으로 흘려보냈다. 반복되는 오해 끝에 아이는 점점 혼자가 되었고, 조별 활동에서는 늘 마지막에 남았다. 친구들은 처음엔 도와주다 점차 거리를 두었고, 그 과정에서 아무도 악의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잔인했다.
주변의 학생들 역시 처음부터 냉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러울 만큼 친절했다. 말을 천천히 건네고, 설명을 다시 해 주었고, 모르는 부분을 대신 처리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예민해진 아이는 점점 날을 세웠고, 작은 말에도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도움을 주려는 말은 간섭으로, 규칙을 상기시키는 말은 차별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아이는 혼자 경찰서를 찾아가 학교폭력 신고를 했다. 교실에서 오간 대화 몇 줄과 표정 몇 개가 공식적인 사건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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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아이가 소중했다. 분명히 그랬다. 그 아이가 교실에서 겪었을 불안과 두려움, 세상이 자신을 밀어낸다는 감각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래서 더 조심했고, 더 많이 설명하려 했고, 가능하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한 발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규칙을 지키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폭력 신고의 당사자가 된 학생 역시 안타까웠다. 그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칙을 상기했을 뿐이었다. 이미 정해진 약속을 지키자는 요청이 폭력이 되는 순간 그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한 채 가해자의 자리에 놓였다.
그 아이는 이후로 말수가 줄었다. 규칙을 말하는 대신 눈을 피했고, 친구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도 혼자 참았다. 혹시라도 또 다른 오해를 낳을까 봐, 혹시라도 누군가의 상처가 될까 봐 스스로를 조심시키는 모습이 나는 더 마음에 남았다. 배려가 죄가 되고, 침묵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어버린 교실에서 그 학생은 너무 빠르게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쪽의 편도 들 수 없었다. 한 아이의 취약함을 이해하는 일과, 다른 아이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않는 일은 동시에 가능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교실은 종종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그 선택을 매번 교사에게 맡기는 방식이 과연 옳은지, 나는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
결국 그 아이는 학교에 불만이 생길 때마다 교장실에 민원을 넣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아이가 지닌 취약함과 아픔을 이유로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문제를 덮었다기보다는, 당장 더 큰 상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계절이 몇 번 바뀌고 아이는 큰 사고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졸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여전히 관계와 학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듣는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뒤에는 그 아이를 대신해 설명해 주거나 완충해 줄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나는 과연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학교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다음 단계로 미뤄 둔 것일까.
그래서 나는 다음에 또 비슷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자주 생각한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아이들이 더 이상 개인 교사의 고민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경계에 서 있는 아이들을 위한 준비와 책임을 학교는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그 부담을 교실 한가운데에 내려놓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다음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학생 개개인의 취약함을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제도의 한계와 교사의 역할에 대해 고민함. 갈등 상황에서 지도 방식과 책임의 무게를 되돌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