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교사가 바라보는 MZ 세대

나는 아직 MZ이고, 이미 교사였다.

by 최선

미디어 속 MZ는 종종 그렇게 그려진다. 이해할 수 없는 문화를 선도하고, 공감은 요구하지만 책임은 회피하며, 기존 질서를 불편해하는 요즘 애들.


처음 내가 이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부장님께서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번에 발령받은 신규 선생님이 2000년생 MZ세대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순간 나는 아직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버릇없고 자기 멋대로일지도 모르는 MZ 교사’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교사와 MZ 그 둘 사이 어디쯤에 서 있는 사람일까.




고연차 선생님들 사이에서 MZ는 종종 하나의 이미지로 묶였다. 자유분방하고, 개인주의적이며, 쉽게 지치고, 권위에는 약한 세대.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이미지를 깨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어느 날, 무릎 정도에 트임이 있는 긴치마를 입고 출근했을 때였다.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그 옷, 너무 섹시한 거 아니야?”


장난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속에 뼈가 있다는 것을 느껴서 한동안 멍해졌다. 규정을 어긴 것도 아니었고, 스스로도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복장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교사이기보다 아직 직장생활에 적응 못한 어린 애로 분류된 느낌을 받았다. 나는 학교생활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는데, 그 진심은 복장보다 먼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회의 시간에는 유난히 더 메모를 했고, 굳이 부탁하지 않은 일도 먼저 나서서 하려고 노력했다. 지각이나 복장, 말투처럼 사소한 것들까지도 스스로 점검했다. 내가 부족해서라기보다 MZ라서 그렇다는 말이 따라붙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교사로서의 첫 몇 해를 나 자신을 증명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아이들 앞에 서면 상황은 또 달랐다. 같은 MZ세대라고 해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통할 거라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아이들이 쓰는 은어는 금방 업데이트되었고, 유행하는 노래와 밈은 따라잡기 전에 바뀌었다. 최근에는 '너무 웃겨서 도티 낳았어요'와 같은 유행어를 디엠으로 받았는데 잘 이해하지 못해서 곤란을 겪은 경우도 있었다. “선생님, 그거 몰라요?”라는 말 앞에서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내가 생각보다 빠르게 이전 세대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부터 내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이 선명해졌다. 고연차 교사들에게는 아직 미숙한 신규였고, 동시에 아이들과는 같은 세대라고 말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MZ 교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정작 MZ인 학생들의 세계에도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위치. 그 애매한 경계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은 생각보다 외로웠다.


젊은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호감을 얻는 교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실제로 아이들의 형제자매가 나와 비슷한 또래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에게 왠지 모를 친밀감과 가까움을 느끼기도 하고 나이가 있으신 선생님들보다 더 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나는 곧 또 하나의 어른이 될 것이고, 같은 세대를 공유하는 아이들과의 교집합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더 이상 같은 문화를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교사로서 나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지점에서 교사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 같은 교사보다 필요할 때 곁을 지켜주는 어른이 되는 것. 교집합이 줄어들수록 내가 더 단단하게 가져야 할 것은 태도와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MZ 교사로서의 장점은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 나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젊은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세대와 상관없이 계속된다. 나는 이제 MZ라는 이름표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저 한 명의 교사로서 아이들 앞에 서는 법을 배우고 있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교사라는 이름 앞에서 세대보다 태도를 먼저 돌아봄.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과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 역시 성장의 일부였음을 인정함. 친구 같은 교사보다 필요할 때 곁을 지켜주는 어른이 되고자 다짐함.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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