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가 담지 못한 시간의 얼굴
21세기 미래교육을 논하는 요즈음 세상은 AI와 고교학점제 등 여러 가지 교육 키워드를 내어 놓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주목하는 주제는 학군이 아닐 수 없다. 부동산 투자 측면에서도 학군지는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학군은 아이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로 여겨진다.
실제로 학군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당시 새벽까지도 불이 꺼지지 않는 학원가를 누비며 대입에 힘썼다. 밤을 밝히는 청춘의 열정으로 빛나는 광경이지만, 세상의 모든 가치를 성적으로 순위 매기는 시간들은 적막하고 외로웠다.
바다마을 면소재지에 자리한 지금의 우리 학교는 어업과 중공업으로 이어진 지역의 삶 위에 서 있다. 이곳은 다양한 지역과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함께 모여, 저마다의 언어와 얼굴로 학교를 조금씩 다른 색으로 빛낸다. 모의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지도, 예체능 대회에서 성과를 거두는 일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박하고 작은 행복들로 학교를 채워주는 학생들이 있어 행복한 곳이다.
농어촌 대입 전형에 해당하는 우리 학교 근처에는 학원이 거의 없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려면 배차 간격이 한 시간이고, 방과 후에 남아 수업을 듣는 아이들에게 석식이 따로 지원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을 조금이라도 올려 보겠다고 내 방과 후 수업에 남는 아이들이 있다. 해가 기울고 교실이 조용해질 무렵 배고픔을 참고 문제를 풀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곳에서의 교육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학교 근처 마당이 있는 집에서 닭을 키우고, 텃밭을 가꾸는 아이들도 있다. 방과 후 수업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오늘 닭이 알을 낳았어요.”, “상추가 다 커서 저녁에 따 먹을 거예요.”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섞인다. 학군지의 건조하고 눈 시린 조명 아래에서 문제집을 넘기던 나의 학창 시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그러나 그 삶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잔잔하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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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들 중에는 전교부회장을 맡았던 한 남학생도 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동남아 계열의 외국인이지만, 아이는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자랐다. 집에서는 공장에서 일하시는 부모님보다 한국어가 더 능숙해, 자연스럽게 집안의 가장 아닌 가장 역할을 해왔다. 행정 서류를 처리하고 학교에서 전달되는 가정통신문을 설명하며, 때로는 부모님의 통역가가 되기도 하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늘 밝았다. 학교생활에도 성실했고, 맡은 역할 앞에서 한 번도 책임을 가볍게 여긴 적이 없었다. 교실에 들어서면 먼저 인사를 건네고, 주변 분위기를 살피며 웃음을 나누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있는 교실은 이상하게도 조금 더 환해졌다.
물론 완벽한 학생은 아니었다. 가끔 지각을 해서 혼이 나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늘 이 마을답게 귀여웠다. 새벽에 낚시를 다녀오다 늦잠을 잔 날들이었다. 나는 엄하게 혼을 내면서도 속으로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곤 했다. 그 아이의 생활이, 이 바다마을의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 꿈장학재단 장학생에 지원해 선발되었을 때의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결과를 확인하고 둘이 마주 앉아 손뼉을 치며 기뻐하던 순간. 누군가의 가능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장면을 교사로서 곁에서 함께 기뻐할 수 있다는 건 이 일을 하며 얻는 가장 큰 보상이었다.
아이는 결국 스포츠지도학과에 합격했다. 자신의 몸을 쓰고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참 그 아이다웠다. 바다처럼 넓고 단단하게, 자기 속도로 살아갈 아이의 미래를 나는 진심으로 응원한다.
학군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학교가 있다. 성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아이의 성장이 있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다양한 삶의 배경을 지닌 학생들의 일상을 세심히 바라보며, 학교라는 공간이 배움과 쉼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도함.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학생들과 함께 머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성적 너머의 성장을 기다리는 태도를 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