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월급

안정성과 성과에 대한 고찰

by 최선

교사의 급여는 사실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포털사이트에 공무원 호봉표를 검색하기만 해도 이미 2026년의 호봉표가 이미지로 정리된 파일이 곳곳에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굳이 나와있는 여러 자료들 속에서 첨언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교사의 급여와 상여, 연봉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직장인의 시선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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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급여명세서를 처음 확인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기간제 교사로 2달간 근무했을 당시 나는 만 22살이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9호봉이었던 나는 공무원연금을 내지 않고 국민 연금을 납부했기 때문에 실수령액이 250만 원 정도였다. 그 해의 나는 주말을 모두 쉴 수 있고 평일도 8:30 - 16:30의 일과만을 해내면 되는 이 직업의 워라밸과 급여에 만족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급여명세서의 여러 항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내가 그 급여와 수당, 상여를 받는 근거가 보였다. 뭉뚱그린 숫자에 감사하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 각 항목들과 내가 업무에 쏟은 노력을 비교하게 되는 염세적인 심리인지, 본전을 찾고 싶은 마음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항목은 담임수당이었다.


담임수당은 내가 발령받은 첫해에는 13만 원이었다. 그런데 서이초 사건이 터지고 여러 교사단체의 노력에 힘입어 20만 원으로 인상되었다. 숫자로만 보면 분명 오른 것이 맞다. 그러나 이 금액이 정해진 기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학급마다 학생 수가 다르고,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한 반에 서른 명이 육박한다. 그래서 교사들 사이에서는 반쯤 농담처럼 이런 말도 오간다. “차라리 두당 만 원이면 계산이 쉽지 않겠어요?” 웃으며 하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담임이라는 역할이 여전히 정량화하기 어려운 책임으로 남아 있다는 자조가 묻어 있다.


예전에는 이런 구조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몇 년을 보내고, 이 당연한 구조가 사실은 내가 선택한 안정성에 대한 대가임을 조금씩 실감하게 된다. 세상에는 수입이 들쭉날쭉한 대신 상한선이 높은 일들도 많고, 안정성은 적지만 속도가 빠른 길도 있다. 반대로 지금의 나는 속도는 느리지만, 멈추지만 않으면 계속 앞으로 가는 길 위에 서 있다.




요즘 아이들은 경제적인 부를 비교적 선명한 목표로 삼는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을 일찍부터 탐색하고, 그에 맞는 직업과 경로도 빠르게 바뀐다.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버티는 서사는 점점 낡은 이야기가 되었고, N 잡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그런 흐름 속에서 가끔은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이 안정적인 급여 구조에 기대어 있는 내가, 시대의 속도에서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질문은 늘 불편한 감정을 동반한다. 변화에 대한 고민을 꺼내는 순간, 마치 교사의 헌신과 봉사정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교사는 돈을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고, 급여에 대한 문제의식은 곧 사명감의 부족으로 오해받기 쉽다. 안정성을 선택한 직업이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말도 여전히 쉽게 따라붙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줄어들고, 교육이 점점 더 개인화되는지금의 학교를 떠올리면 이 생각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한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더 세밀해졌다. 학습만이 아니라 정서, 관계, 생활 전반을 함께 살피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교사의 급여가 특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시대가 바뀌었듯, 교사를 바라보는 기준과 보상 방식도 함께 변하길 바란다. 비겁한 촌지와 교사의 정당하지 않은 체벌을 없애며 교직의 얼굴을 바꿨던 것처럼, 청렴한 문화 위에 노력과 성과가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하길 희망한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교사라는 직업의 안정성과 성과에 대한 보상에 대해 고찰하며, 청렴한 문화 위에 노력과 성과가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하길 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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