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가방에서 드라이버가 나왔다. (1)

경우 없는 세계

by 최선

<경우 없는 세계>라는 책을 아시나요?


책의 제목을 보면 '경우 없다'는 관용구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전적 의미로는 '사리 분별을 못하여 예의나 의리를 지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책은 어른들에게 흔히 '경우가 없다'라고 평가받는 가출 청소년의 비행과 혼란, 방황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책의 내용이 주인공이 핵심 인물인 '경우'와 함께하며 느낀 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제목은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주인공은 청소년 시절 가부장적이고 독선적인 아버지에게서 도망치듯 가출을 하고 방황과 혼란을 겪으며 가출팸에 합류한다. 그들은 미성년자 신분이라 아르바이트를 하기 어려워 보험사기로 푼돈을 벌거나 불법적인 일에 휘말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시체를 유기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부모의 도움을 빌려 책임을 회피하거나 형사 처벌을 받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소설은 시체 유기라는 극단적인 서사적 장치를 활용하고 있지만 가출 청소년의 비행과 혼란의 양상은 오히려 현실에서 더욱 심각하다. 책 속의 비극은 픽션이지만, 내 출석부 위 빈칸은 논픽션이다.




신규 교사로 발령받은 첫 해, 우리 반에는 3월 초부터 다양한 개성의 아이들로 북적였다. 재치 있고, 밝고, 한껏 들뜬 아이들 사이에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매일 후드집업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있던 아이. 아이는 교실의 빛과 소음을 모두 거부하겠다는 듯, 자신만의 두꺼운 외투 속에 웅크려 들었다. 그 아이의 곁을 스칠 때면 불쾌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며칠은 감지 않은 듯한 머리카락 냄새, 눅눅한 빨래 냄새, 그리고 설명하기 힘든 삶의 비린내 같은 것들.


처음엔 그저 씻기 싫어하는 사춘기 소년의 반항심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불쾌한 냄새는 아이가 세상에 보내는 아주 절박하고도 서툰 구조 신호였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고2 학생이 학기 초 매일 엎드려 잔다는 것은 대체로 학업에 흥미가 없거나, 전날 게임에 몰두했거나, 아르바이트 때문에 피로가 상당하거나 적당히 그 정도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어머님께서 장문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갔나요?"


아이의 행방을 묻는 학부모님의 목소리에는 자식의 일상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의 불안과 체념이 섞여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눈 뒤에야, 나는 비로소 그 코끝을 찌르던 냄새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이는 가출 중이었다.


처음에는 흔히 일진이라 불리는 아이들과 어울려 다닌 것이 문제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이의 가방에서 드라이버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공업 고등학교도 아닌 평범한 고등학생의 책가방에 들어있을 리 없는 그 쇳덩이는 이질적이다 못해 서늘했다. 그것은 동전 노래방의 기계를 뜯어내고 지폐와 동전을 훔치기 위한 도구였다고 했다. 아이는 이미 비행의 얕은 물가를 지나 범죄라는 깊은 늪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던 것이다.


놀란 부모님은 아이의 휴대폰을 뺏고 방 안에 가두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억압은 치료제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아이를 더 깊은 어둠으로 밀어 넣었고, 결국 아이는 자신을 옥죄는 집이라는 세계로부터 완전히 탈출해 버렸다. 그렇게 훔친 돈이 넉넉한 날은 찜질방에서,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날은 찜질방에서 밤을 지새며 가출 생활을 해온 것이었다. 그래도 몰려다니는 일진 무리들 중 친하게 지내는 몇몇이 있었기에 아이가 가출을 빨리 끝내고 돌아가도록 신경 써 달라고 이야기할 뿐, 일단은 할 수 있는 일이 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반 학생 중 한 명이 나에게 늦은 밤 전화를 걸어왔다. 일진 무리 중 한 명이었다. 그 아이의 행방을 아냐는 것이었다. 멀쩡히 하교한 아이의 행방을 물으니 전화를 받는 손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려던 찰나, 그 아이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선생님, 애가 하도 불쌍해서 제가 알바하는 식당에 불러서 식사를 대접했어요. 근데 식당이 문 닫은 새벽을 틈타서 방범창을 깨고 포스기를 털어 갔어요. 걔 좀 찾아주세요."


아이는 이제 단순히 집에 가기 싫은 학생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혹은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을 위해 타인의 선의마저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비정한 거리의 법칙에 완전히 매몰된 상태였다. 소설 속에서 보았던 그 ‘경우 없는’ 비극이 나의 교실, 나의 제자에게서 논픽션으로 재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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