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것도 내 곁을 떠나지 않길 바랐다.
2022년 12월 28일, 임용고시 결과 발표를 앞두고 나는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한동안 임용 준비를 하느라 멀리 가지 못했던 탓인지, 탁 트인 물결을 보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바닷물에 그저 흘려보내고 싶었다. 임용을 준비한 기간이 교생을 나갔던 시절을 포함해 2년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누군가는 내 취준 기간을 두고 코웃음 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듯 불행의 무게 또한 동일하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의 불행도 삶도 함부로 판단하려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타인의 삶을 가늠하려 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당시 내가 스무 해 넘게 살아온 나의 고향에는 바다가 없었다. 오직 푸르고 빼곡한 산만이 온 시야를 뒤 감을 뿐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무작정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쉽게 발걸음이 옮겨지는 일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감히'라는 자기 연민과 열등감 그리고 뒤틀린 자의식이었다. 기차를 타고 평온히 창밖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는 바다에 가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한동안 불행에 중독된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순도의 행복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상한 반항심을 품고 산에 올랐다.
산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바다가 그러하듯이. 하지만 조금 더 육중하고 무겁고, 그 모습 그대로였다. 바다가 흘러간 시간을 반영하듯 파도가 뒤척인다면, 산은 늘 그렇게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그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나는 바다보다 산이 좋았다. 지극히 모순적이게도 모든 것을 흘러 보내고 싶었으나, 그 어떤 것도 내 곁을 떠나지 않길 바랐다.
12월의 산에는 눈이 내렸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연약한 연갈색의 가지에는 희고 어두운 눈이 두껍게 내려앉았다. 작은 결정체인 눈송이가 수없이 쌓여 산을 덮은 모양새는 마치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앙금으로 갈앉은 듯했다. 나 또한 그 수많은 눈의 결정 중 하나일 뿐이라는 지극한 우주의 진리가 왠지 모를 위안이 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뜨거웠으나 금방 차가워진 숨을 내쉬며 산길을 오르자 내가 바라던 모든 것들, 나의 결핍이자 상처라 여겼던 일순간의 불행은 모두 찰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중턱에 올랐을 즈음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걸어온 작은 발자국은 나를 산의 한 허리에 데려다 놓았고, 나는 빽빽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무들 사이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내 몸보다 큰 짐인 양 불행을 짊어지고 산을 올랐던 나는 대자연에 압도되었다. 시리게 푸른 하늘과 흰 눈으로 덮인 산, 그 사이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불행과 고통과 걱정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한 숨을 내쉬고 견디는 법을 배우며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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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합격 결과를 확인한 순간에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눈시울이 잠깐 붉어지고 코끝이 찡하긴 했으나, 잠깐이었다. 내가 상상한 행복의 크기만큼, 내 모든 불행을 해결해 줄 만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인생의 또 다른 챕터에 서게 되었고, 내가 마주할 모든 인연들에게 이제 나는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 그 책임감은 나를 벅차게 했다. 그렇게 나는 신규 국어 교사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