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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스 May 15. 2021

코로나와 싸운다 (8) - 우리는 한파에 버려졌다

청원경찰의 재난현장 대응일지 - 우리는 한파에 버려졌다

2021년 1월 13일 수요일

     

방역복을 입고 컨테이너를 나가는 순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그대로 얼음이 되어 페이스실드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근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 앞에서 옷이나 방한도구는 무용지물이었다. 민원인들을 안내하거나 움직이기는커녕, 얼어 죽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일 정도였다.     


영하 25도였다. 10년 전 강원도 철원에서 군복무를 할 때 영하 23도에 훈련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수은 온도계가 깨져버렸던 그 날보다 2도가 더 낮은 것이다. 발가락과 손가락은 마비가 와서 잘려나간 것 같고, 등과 가슴의 떨림은 멈추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앞도 안 보여 어떻게 안내를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매일 영하 15도 정도의 한파였기에, 옷을 최대한 두껍게 입고 다녔다. 먼저 런닝셔츠에 나시, 거기에 내복에 반팔, 그 위에 또 반팔과 긴팔, 다시 트레이닝 져지, 거기에 두꺼운 후드티, 등산용바람막이, 또 위에 패딩까지 총 10겹의 옷을 입는다. 마치 뚱뚱한 곰처럼 둔해보이고, 안으로는 압박감 때문에 숨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했지만 그정도를 입어야 간신히 추위에서 견딜 수가 있다. 그마저도 출근길 잠깐만 견디는 것이지, 근무를 서기 위해서는 옷과 신발쪽에 붙이는 핫팩을 여기저기 12장정도 붙여야 한다. 그 핫팩 때문에 새로 산 신발이 상하는 일도 있었다.     


이 정도 준비가 영하 15도의 날씨를 간신히 견뎌낸 건데, 오늘은 그마저도 뚫려버렸다. 마치 온몸이 물속에 빠진 것처럼 추위가 엄습해왔다. 비닐장갑을 나눠줄수도 없고, 나눠주기도 싫어서 검체도구를 포장했던 상자를 뜯어서 거기에 비닐장갑을 담아 민원인들에게 알아서 착용하라고 했다. 접수처 부스 안에 있는 난로를 벗어날 수가 없어서 안내는 포기하다시피 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머리가 하얀 채로 어떻게 근무를 견뎠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보건소 안에서 히터바람을 쐬며 비로소 머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청원경찰이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머리를 맞대었지만 별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우선 며칠 전 우리에게 찾아왔던 대청협 지역사무국장이라는 P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곳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설명한 뒤에 우리가 언제 파견이 끝날지를 물어보았다.     


그러나 P선배는 우리의 파견을 복귀시킬 권한도, 의지도 없었으며, 파견에 대한 정보도 자세히 모르는 눈치였다. 그저 이곳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근무하는 모든 청원경찰들도 코로나 사태와 관련하여 고생하고 있으니 함께 힘을 내자는 섭섭한 말만 들려줬다.     


차라리 우리가 제일 고생을 하는 건 알겠지만 별 방법이 없다고 솔직히 얘기해줬으면 섭섭하진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우리 말고 누가 코로나 때문에 고생을 한다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수십 년을 먼저 복무한 선배라는 사람에게 그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삼켜버렸다.   

  

그다음은 우리의 채용과 임용식을 담당했던 총무과 인사담당자에게 전화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파견이 언제 끝날지 물어봤지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우리의 파견근무가 언제 끝날지 인사담당자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파견은 처음부터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애초에 코로나 사태가 일찍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예상했고, 선별진료소 운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것도 알았으며, 거기에 투입될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시의 지침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배신감이 들었다. 그 충격은 한파와 결합되어 더 크게 다가왔다. 애초부터 우리를 이곳에 무기한으로 파견시킬 생각이었다면, 최소한 우리에게 그런 정보를 알려주고 근무환경 조성을 위해 신경 써주는 척이라도 했어야 맞는 게 아닌가. 행정정보에 접근하고 기안을 올리는 간단한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것부터, 이 위험하고 추운 장소에 파견명령하나만 내려놓고 한 번도 우릴 들여다보지도 지원해주지도 않은 거다.     


배신감은 배신감이고 내가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결국 내 소속은 시청이지만 보건소에 배속된 처지니 보건소 안에서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해야 이 열악한 여건을 개선할 수 있을지 판단해야 했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던 중 이번에는 K형에게서 가슴 아픈 말을 들었다.     


“나 다른 기관에 지원했어.”     


공공기관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호봉으로 인정받지도 못한 채, 선별진료소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을 견디다 못한 K형은 이직을 결심한 것이다. K형은 사실 임용되어 진료소에 투입한 날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최근에는 줄담배를 펴기도 했다. 나는 K형에게 남아서 함께 근무하자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그저 지원한 곳이 합격하길 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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