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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스 May 13. 2021

코로나와 싸운다 (7) - 야간근무는 무서워

청원경찰의 재난현장 대응일지 -  야간근무는 무서워

2021년 1월 5일 화요일 


야간근무 중 어딘지 모르게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접수를 받고 있었는데 몇 분이 지나도 이 사람은 가지 않았다. 보통은 2분 이내에 접수를 마치고 검사키트를 받은 뒤에 검사하러 간다. 검사신청서에 고개를 숙이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쓰고 있길래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슬쩍 보았다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신청서의 모든 칸에 글씨를 꽉꽉 채워넣고 있었다. 마치 도장처럼. 내색은 안 했지만, 그가 혹여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해를 끼칠까 긴장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해를 당한다면 음압실에 있는 근무자들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검체자는 모두 여성들이었고, 본인의 몸을 지킬만큼 단련한 분들 같지는 않았다. 그가 글자를 적는 몇 분이 나에게는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제가 이상한 강박증이 있어서 오래 걸렸네요.”     


이 말을 내게 해주지 않았다면 그가 검사를 받고 나가고도 끝까지 찝찝한 기분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이 말을 내게 해주고 아무런 특이사항 없이 지체없이 검사를 받고 진료소에서 퇴장했다.     


평소라면 글씨 좀 이상하게 쓰는 것 가지고 긴장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야간에 혼자서 누군가와 대면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야간근무는 안내/접수, 명단입력 및 검사분배, 검체로 작업체계를 바꾼다. 그런데 명단입력자와 검체자는 음압실 안에 있고, 안내접수자는 바깥에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바깥에서 안내를 받지 못하면 진료소의 위치를 찾지 못할뿐더러, 검사신청서를 주고 받는데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야간에는 검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 자체가 적어서 민원인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 섬뜩한 일을 겪고나서 예전에 C군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C군이 야간근무를 서던 날 누군가가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자꾸만 침을 뱉은 적이 있었다. 그는 검사를 다 받고도 나가지 않고 서성거리면서 또 침을 뱉었다. C군이 침 뱉지 말고 진료소를 빨리 나가라고 하니 잠깐 노려보다가 나갔다.     


그런데 그 사람은 C군이 근무를 선 다음 날 오전에 진료소에 찾아와서 난동을 부렸다. 소리를 지르며 주차된 자동차 사이드 미러를 부러뜨리고, 지나가던 사람을 이유 없이 치면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이 와서 체포해갔다. 알고 봤더니 그 사람은 정신지체를 앓는 사람이라고 했다.    


 


오늘은 단순히 글씨 강박을 겪는 사람의 일화로 끝났지만 야간근무를 서다가 나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크리스마스때처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언제든 검사를 받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에 다시 의문을 품었다. 얼마 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야간근무를 야외에서 한다는 것은 보안상 너무 큰 변수와 위험을 내포한다.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일과 중 올 수 없다면 주말에 검사받으러 와도 될 것 아닌가.     


백번 양보해서 야간에만 올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야간근무가 꼭 필요하다면 음압실 외부에서 근무하는 근무자에게는 최소한의 보호장비라도 지급해야 한다. 본래 청원경찰은 단봉과 가스분사기 휴대가 가능하다. 보건소에 근무하는 데 그 정도가 과하다면 방검복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나의 안전도, 보건소 직원들의 안전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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