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은 별자리 운세가 유행이라 별자리 별로 유형을 나누고 궁합을 보기도 해서 친구들과 별자리 풀이를 재미로 즐기곤 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사주팔자, 별자리 이런 것들을 믿지 않고 종교도 없다.
그런 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국에 방문해서 엄마, 아빠를 대동하고 아주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 강원도까지 내려갔다. 강원도 빙산이라는 지역에 있는, 연예인들도 많이 간다는 산속에 있는 점집이었다. 한옥에 들어서서 만난 점쟁이는 생각보다 점쟁이처럼 생기지 않고 큰 특징 없이 평범한 중년의 여인이었다. 점집도 점집 같지 않고 일반 한옥 같았다. 그녀는 우리를 보고도 별 말이 없었다. 이렇다 저렇다, 운세가 좋다 나쁘다 할 것도 없이 편안하고 조금은 흐뭇한 얼굴로 우리 가족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별로 할 말이 없어 보였다. 사실 우리 가족은 딱히 문제가 없이 행복하다. 점쟁이가 별로 걱정이 없는 우리 가족에게 별 말이 없는 걸 보고 나는 그녀가 진짜로 용하다고 느꼈다. 나는 점을 믿지 않지만 그녀에게서 현생을 넘어선 에너지를 느꼈다. 무언가 내가 모르는 걸 알고 있다는 직감을 받았다.
거의 아무 대화 없이 우리의 시간이 끝나고, 우리가 일어서자 그녀는 배웅 나왔다. 한옥 앞에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검은색 벤츠가 주차돼 있었다. 그 안에서 운전기사와 키가 작지만 보통이 아니어 보이는 노신사가 나왔다. 점쟁이는 다음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우리의 차가 있는 곳으로 조금 더 함께 걸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사람을 초월한 아우라를 느꼈다. 그래서 막판에 어떤 진실이라도 얻고자 그녀에게 물어봤다. "저희 뭐 조심할 건 없어요?" 그녀가 답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병원에다 물어봐야지." 그녀의 시선은 질문한 내가 아니라 엄마를 보고 있었다. 그 말투가 너무 담담했다. 사람은 어차피 모두 천명이 다하면 죽고, 엄마는 질병 관련으로 죽음을 맞을 거란 말이었다. 사람은 사고를 당하지 않으면 누구나 질병으로 죽는다. 우리 엄마는 사실 몇 년 전 크게 아픈 적이 있고 회복한 지금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닌다. 엄마가 언젠간 죽을 거란 건 알지만 초인간적인 사람에게 그 일이 틀림없이 일어날 거란 말을 들은 나는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오면서 죽음이 언젠간 찾아온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엄마가 죽으면 내 삶은 바로 무너질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왜 사람은 언젠간 죽어야 하는 거야!" 라며 오열했다. 옆에서 자던 애인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꿈이었다. 발치에서 자던 강아지도 당황해서 나를 핥아주었다. 깨고 나서도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내 나이 만 29세, 인생의 1/3이 지나갔고 엄마 아빠의 인생은 1/3만을 남겨두고 있다. 요즘 들어 앞으로 부모님이 살 날이 30년도 남지 않았다는 걸 자주 생각한다. 나는 미국에서 동반자를 만나 살고 있는데, 앞으로 엄마 아빠와 우리는 한 나라에서 함께 살 수 있을까? 내가 엄마가 죽을 때 그 옆에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닿으니 내가 지금 몰두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나는 미국에서 행복하고 부족함 없이 살지만 외국에서 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너무 외로울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흩어져 있어서 항상 누군가가 그립다. 항상 누군가를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고 곁에 있고 싶을 때 곁에 있을 수 없다. 나는 불효자다. 꿈에서 깬 후 살면서 처음으로 유학 온 것을 후회했다. 내 옆에 잠들어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나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항상 그리워할 것이다. 항상 내 가슴속엔 상실감이 있고 난 항상 조금은 외롭다. 이제는 부모님이 왜 내가 미국에서 사는 걸 원하지 않았는지, 결혼만큼은 한국 사람이랑 하길 그토록 고집스럽게 원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나 잘났다는 태도로 살고 있지만 사실은 나는 강하지 않다. 나약하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 너무 두렵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너무 두렵다. 운이 좋아서 좋은 가족과 좋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하지만 그 행복이 또 너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나약한 인간이고 이 행복이 무너질까 두렵다. 나도 종교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