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자로 세상에 나왔을 때 아빠와 할머니는 병원에서 크게 실망하셨다고 한다. 이제 와서 아빠가 하는 해명은 자신이 딸을 낳을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아빠의 시선에서는) 여성에게 불리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딸자식을 길러야 할지 걱정되고 심란했다고 한다. 아빠는 성 역할이 확실한 세상에서 여성스럽고 이해심 많은 엄마를 만나 남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왔고, 여성의 역할을 담당한 엄마가 막연히 행복할거라고 생각하면서 아마 여성의 관점에서의 삶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빠는 자고로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나도 여성스럽게 키우려고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사주고, 내 고사리 같은 덤벙대는 손으로 집안일을 돕게 하고,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고, 싫다는 치마를 억지로 입히는 등 노력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인형보다는 레고를 좋아하는 남자아이 같은 톰보이였고 지금도 여성스럽지 않은 어른으로 자랐다.
나는 여성스러운 엄마가 아니라 아빠의 성격을 너무 많이 닮았다. 아빠는 아빠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게 됐다. 여자의 궁극적 목표가 좋은 가정에서 좋은 현모양처로써의 삶이라고 믿었었던 아빠와 아빠를 닮아 자기중심적이고 진취적이어서 현모양처상과는 많이 달랐던 나는 너무 많이 부딪쳤다. 아빠는 아빠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의 특징들을 가진 내가 여성으로 사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여자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여성스러운 것들을 누리는 것 만으로는 행복을 느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과 남자보다 큰 야망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야망을 좇을 때 여자이기 때문에 느끼는 불편함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날 키우면서 보았다. 나는 아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혼 커리어우먼으로 미국에서 살고 있고, 한국인이 아닌 사람과 연애하며 결혼은 차일피일 미루면서 혼전 동거를 하고 있다. 아빠는 나와 싸우면서 여자에 대한 편견이 바뀌었다고 했다. 요즘 아빠는 평생 무의식적으로 하던 성차별적인 발언을 시작하다가도 삼키고, 미투 관련 뉴스에 심란한 표정을 짓는다. 아빠한테 딸이라는 존재는 어찌 보면 아빠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는 재앙이면서도 축복이었다. 나는 아빠를 보면서 어른이 된 후에도 사람은 계속 성장하는 존재란 걸 배웠다.
태어난 성별과 성향이 잘 맞지 않았던 나에 비해 오빠는 성별과 찰떡으로 잘 맞게 태어났다. 가부장적인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서 성격도 외모도 소위 "남자다운" 오빠는 집안의 보물로써, 기둥으로써 여자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많은 특혜와 그에 따르는 남자로서의 희생도 함께 겪으면서 어른이 되었다. 오빠는 어릴 때부터 나중에 태어날 자식들 이야기를 할 때 항상 아들을 낳을 거란 가정을 했다. 항상 "나중에 내 아들은..."이라는 말로 미래 구상을 시작하곤 했다. 오빠는 인기가 많았지만 오빠를 마음 다해 사랑하고 이해해줄 현모양처가 될 여자를 찾느라 결혼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얼마 전 오빠를 참 잘 챙겨준다는 새언니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두 달 후 아빠가 아기의 성별이 여자라는 소식을 전했다. "아들 낳을 때까지 낳으라고 하려고"라는 말과 함께. 나는 아빠한테 제발 헛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와 내가 오버랩되면서 참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빠와 새언니는 성별을 알려준 의사가 당황할 만큼 실망했다고 한다. 요새도 그런 사람이 있어? 싶게 조선시대 마인드지만 그래도 오빠는 좋은 사람이다. 오빠는 아마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미래에 세상 누구보다 그 딸을 사랑하게 될 거다. 아빠에게 나라는 일이 일어났듯, 오빠한테도 딸이라는 재앙스러운 축복이 일어났구나. 앞으로 아빠가 그랬듯이 오빠도 자신이 낳게 될 줄 몰랐던 딸을 키우면서 인생에 대해 배우고 가치관이 바뀔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오빠의 성장과 오빠 인생의 2막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