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준희 Aug 09. 2020

12. 미래가 불투명한 사람과의 연애, 타인의 시선

그리고 결혼

사업 시작


프레드는 나와의 연애를 시작하고 5개월 후 자신만의 투자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보통 펀드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큰 펀드에서 일하다 함께 일하던 고객의 투자를 받아서 시작하거나 재산이 많은 가족이나 지인의 투자를 받아서 하는 경우인데 그렇게 시작해도 90% 이상이 실패하는 분야였다. 프레드는 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 맨땅에 헤딩이었다.


나는 프레드의 능력과 열정은 믿었지만 사업의 성패를 예측할 수 없었다. 맨날 골방에 틀어박혀 투자 분석만 하는 책벌레인 프레드가 어떻게 마케팅을 해서 투자자들에게 노출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성격도 아니고 너무 정직해서 사업 설명을 할 때도 자신을 부풀리는 일이 없었고, 확신을 주기는커녕 앞으로의 일에 대해선 무조건 알 수 없다고 했고, 분기별 실적 발표를 할 때엔 굳이 이야기할 필요 없는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도 매우 디테일하게 설명했다.



데이트 비용을 줄이고, 데이트 비용을 벌다


사업을 시작하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돈이 벌리지 않았다.  프레드에겐 데이트할 돈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데이트 비용을 벌기 위해 낮에는 사업을 하고 밤에는 대학생 금융 과외와 음식 배달을 시작했다. 나는 프레드가 고수익에서 저수익이 된 단 몇 개월 만에 바뀐 상황에 맞춰 삶의 패턴을 바꾸고 불평 한마디, 표정 한번 찡그리는 일이 없는 게 정말 멋있어 보였다. 이런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가족은 기필코 먹여 살릴 것 같았다.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하라고 나도 같이 음식 배달을 시작해서 (배달의 민족 같은 배달 앱을 이용했다) 같은 시간 안에 누가 더 배달을 많이 하고 팁을 많이 받았나 비교하고 내기하면서 일종의 야외활동 놀이처럼 음식 배달을 했다. 보너스로 앱을 이용하는 입장이 아니라 앱을 위해 일하는 입장이 되니 온라인 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프레드를 설득해서 데이트 통장과 데이트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모든 데이트 비용은 데이트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그리고 타임스퀘어 근처에 있는 내가 살던 집을 뉴욕에 놀러 오는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단기로 세를 받고 빌려주고 프레드와 함께 집을 청소하고, 침대 시트를 빨고, 고객을 응대하고, 그 기간 동안은 프레드 집에서 지내는 방법으로 데이트 비용을 벌었다. 위치가 좋은 데다 호텔보다 크지만 훨씬 싼 가격이라 수요가 많았다. 어쩔 때는 내가 내는 비용보다 더 싼 가격에 세를 주기도 했다. 받은 세는 데이트 통장에 넣고 데이트 신용카드를 갚는 데 사용했다. 내가 데이트 비용을 대신 낼 수도 있었지만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 동안 내가 비용을 계속 부담하면 계산할 때마다 프레드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아서 대신 이렇게 같이 일해서 데이트 비용을 버는 방법을 택했다.


데이트 비용도 대폭 줄였다. 택시를 일절 타지 않고 지하철만 이용했다. 고급 레스토랑에 더 이상 가지 않고 밖에서 먹는 빈도를 줄이고 나가더라도 중저가 레스토랑만 찾아다녔다. 중저가 레스토랑도 단지 플레이팅이 예쁘지 않았을 뿐 정말 맛있는 곳들이 많았다.


힘들 때도 많았다. 예쁘게 보이려고 굽 있는 신발을 신고 데이트하는 날에는 발이 아픈데 지하철을 타면서 가끔 욕이 나왔고,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방을 세 줄 여행객을 찾고, 집을 청소하고, 한 달에도 여러 번 내 집에서 짐을 싸서 나와서 며칠씩 남의 집에서 지내는 게 힘들 때도 있었다. 가장 섭섭했을 때는 내가 하는 노력에 프레드가 익숙해진 것 같을 때였다. 나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하고 싶지 않았으면서도 내 배려에 익숙해지면 섭섭한 게 어쩔 수 없는 사람 마음이었다. 다행히 그럴 때마다 대화로 잘 풀 수 있었다.



타인의 시선, 남들과의 비교


비용을 줄인 데이트는 견딜만했지만 불투명한 미래가 몇 년으로 길어질수록 가장 힘든 것은 타인의 시선이었다.


프레드는 나에게 타인들은 볼 수 없는 정말 좋은 내면의 영향을 주고 있었다. (프레드에 비해) 느긋한 성격이었던 내가 매사에 열심히 하도록 항상 정신적으로 채찍질했다. 주말마다 적어도 반나절은 책을 읽고 공부했고 주말마다 신문과 경제잡지를 읽으며 지식을 쌓았고 내 취미였던 투자가 부업으로 업그레이드되도록 도와줬다. 공부 외에는 다른 걸 해본 적이 없었던 내 직업적 재능을 사실상 프레드가 발굴했다. 프레드가 사업을 그만둘 무렵 대학원을 졸업한 내게 이력서 준비와 취직 노하우뿐만 아니라 금융계에서 보고 배운 연봉협상 기술도 알려 주어서 내가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런데 우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밖에서 바라보는 상황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  프레드가 나에게 준 영향은 그 과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수밖에 없어서 타인에게 보이는 것은 미래가 불확실하고 벌이가 시원치 않은 프레드에 비해 내가 유망한 직종에서 일하며 프레드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과 더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은 단면적이고 이력서 적인 부분들 이었다. 부모님은 아끼는 딸이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 취직한걸 프레드를 탓하셨고 프레드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도 탐탁지 않아하셨다. 부모님이 아닌 주위 사람들에게서도 더 나은 사람을 만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종종 들었다.


나도 나였지만 프레드 나름대로도 그의 주변의 시선과 비교를 마주했다. 프레드가 사업을 일으키려 고군분투하는 동안 다른 금융계 동창들은 연차가 쌓이면서 꾸준히 승진하고 높은 연봉을 받았고, 가끔 만나면 프레드의 사업이 실패할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고 (워낙 성공하기 힘든 분야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긴 하다) 나한테도 느껴질 만큼 프레드를 은근히 깔보기도 했다. 심지어 프레드 부모님 마저도 아들의 꿈을 지지하긴 했지만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다.



타인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어도 그는 한 번도 부러워하거나 시기심을 보이거나 화를 낸 적이 없다. 타인이 자신의 능력이나 가능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즐겨서 그런지 주위에서 어떤 말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낮으로 주말도 없이 일과 부업을 하며 무소의 뿔처럼 외길을 가는 프레드를 보면서 나도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프레드가 처음에 똑똑해서 끌렸고 단순해서 반했고 선하고 올곧은 성품 때문에 사랑하게 됐다. 그같이 사랑도 일도 열정적으로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고 이런 사람은 성공은 못하더라도 책임감 하나는 확실할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엔 그의 성공 가능성이 좋았는데 사랑하게 된 다음엔 성공하지 못해서 내가 먹여 살리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생각이 나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나는 프레드의 경제적 상황이 언제 좋아질지 알 수 없고, 부모님이 반대하시니 혼인신고부터 하자고, 그러다 애가 생기면 부모님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거라고 했지만 프레드는 거절하고 나와의 결혼도 정도를 가고자 했다. 천천히 공을 들여 내 부모님의 마음도 돌렸다. 부모님은 내가 아깝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프레드가 착해서 너를 만나준다고 하신다. 4년 후 오늘 우리는 결혼했다. 그는 여전히 심성이 착하고, 올곧고, 내가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일 할 거지만) 성공했고 사업은 매년 더 커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사귀자는 말을 생략하면 언제부터 사귀는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