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준희 Aug 17. 2020

13.[부록] 혼전 동거 해보니 어려웠지만 대찬성입니다

내가 처음 혼전동거 의사를 통보했을 때 부모님은 거의 뒷목을 잡고 쓰러지셨다. 독립한 지 오래인 딸과 약혼자의 혼전 동거가 왜 문제냐는 질문에 부모님은 답은 이랬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라."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나는 동거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값진 것들이 잃는 것보다 많다고 생각한다.



혼전 동거로 얻는 것들


혼전 동거는 크게 싸울 수 있는 기회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보다 더 긴 세월을 함께할 동반자를 고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금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인 지보다 앞으로 변화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를 알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면 된다. 당장은 연인에게서 부족한 모습이 많이 보이더라도 서로 부딪치는 일이 있을 때 사려 깊게 좋은 타협안을 찾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앞으로 살면서 좋은 반려자가 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동거는 각자의 생활을 공동의 생활로 바꾸는 과정이라 단순히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하는 연애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기엔 최고의 과정이다.


개인의 '생활'은 가장 타협하기 힘든 부분이다. 우리도 3년을 만나면서 겪었던 단순한 연인 간의 문제와는 다르게 식습관, 정리정돈, 소비패턴, 시간소비패턴, 취미, 가족과의 관계, 기상/취침 시간 등 모든 것을 재점검해야 했다. 서로의 생활방식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정말 어려웠고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우선순위와 경계선뿐만이 아니라 나의 우선순위와 경계선들을 확실하게 알게 됐다. 만약 남자 친구와 결혼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음 연애를 위해 정말 값진 경험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돈 관계에서 깊은 배려심이 보인다


사람의 경제관념과 소비패턴은 개인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대변한다. 친구들과 여행만 가도 소비패턴과 비용 배분을 보고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돈 문제로 종종 부딪치기도 한다. 동거할 때에는 적어도 생활비를 공동 부담하게 되니 무조건 돈 관계로 엮이게 된다. (한 사람이 생활비를 부담한다고 해도 그것 또한 돈 관계다.) 공동 부담하는 영역과 개인부담의 영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이는 상대의 돈을 아껴주려고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돈만 아깝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는 하나라도 더 베풀려고 하고, 어떤 이는 남의 돈을 낭비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동거나 결혼 관계에서 둘 다 젊고 경제활동을 할 때부터 금전적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거나 부상을 당하는 것 같은 피치 못한 사정으로 한쪽이 일을 못하게 된다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버팀목이 돼 주지 않을 사람일 것이다. 또한, 함께 살면 서로의 씀씀이도 보게 되는데 씀씀이가 맞지 않다면 같은 재정적 미래를 바라보기 힘들다.




동거는 애인이 인생의 반려자로 좋을지 알아볼 수 있는 과정이며 결혼한다면 갑자기 한 번에 폭격을 맞을 마찰을 조금씩 해결해 나가며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 그러다 타협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서 헤어진다고 하더라도 다음 사람을 만날 때 더욱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부부가 된 나와 남자 친구도 함께 살면서 크고 작은 문제에 많이 부딪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배려하며 서로에 대한 마음이 더 돈독해졌고 더 큰 확신이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