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준희 Aug 08. 2020

11. 사귀자는 말을 생략하면 언제부터 사귀는 걸까?

<데이팅 프로젝트> 매거진은 건어물녀였던 제가 적극적으로 연애하기 위해 노력했던 3개월 동안 만난 사람들과 느낀 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귀는 것과 만나는 것의 차이


모두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사귀는 것과 만나는 것의 경계가 분명하다. 나에게 사귀는 것은 다른 이성을 만나지 않고 서로와만 연애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혹은 다자 연애의 경우, 서로 합의한 범위 안에서만 연애하겠다고 약속하는 것) 관계의 시작이 분명하고 관계의 끝이 분명하다. 만나는 것은 호감은 있지만 지켜야 하는 약속은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만나는 사람이 한 명뿐이라고 해도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따로 끝맺음이 없어도 만나다 어느 날 만나지 않으면 말없이 끝나는 게 만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데이팅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전 남자 친구들과는 사귀기로 서로 동의하고 연애를 시작한 정확한 날이 있었고 헤어지기로 한 정확한 끝맺음이 있었다. 데이팅 프로젝트 중 지속적으로 만난 서너 명을 동시에 만나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사귀기로 약속한 적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을 만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한국인들은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고 사귀기도 한다던데


어느 날 남사친 커플에게 밥을 사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데이팅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던 남사친이 식사 자리에 내가 만나는 남자들 중 한 명을 초대하라고 했다. (나와 함께 누가 먼저 연애하나 내기했던 남사친인데 그가 먼저 여자 친구를 사귀어서 내기에 진 벌로 밥을 사야 했다.) 그래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프레드를 초대했다. 함께 식사하고 남사친은 프레드가 착하다고 정말 좋아했고, 그가 보기에는 프레드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직 프레드가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며, “프레드는 너희가 이미 사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나는 프레드가 워낙 평일에 문자나 전화 연락을 잘하지 않아서 막연히 나 외에도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 말을 들으니 미국인들은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정말 말없이 사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은 사귄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아니라면 그건 큰 문제인 것 같았다. 



우리가 사귄다고 생각해?


물어보지 않고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음번에 프레드를 만났을 때, 저녁을 먹고 나서 프레드에게 물었다. “너는 우리가 사귄다고 생각해? (do you think I’m your girlfriend?)” 그랬더니 프레드가 매우 당황하며, “나는 너하고만 데이트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야 (I’m only seeing you and I don’t plan to see anyone else)”라고 했다. 친구의 말대로 프레드는 우리가 사귄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그가 기분 나빠할 건 당연하지만 (혹은 나와 더 이상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를 기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나는 우리가 사귀자는 말을 한 적이 없어서 사귄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너에게 호감이 있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도 만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가 약간 당황하더니 이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비장하게 답했다. “알겠어. 내가 이길게. (That’s fine. I’ll win.)” 


이 대답에 프레드에게 반해서 일주일 뒤 만나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만 만나자고 통보하고 정식으로 사귀자고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 30번의 첫 데이트 후 생긴 데이트 노하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