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빠와 부딪치는 일이 잦았다. 둘 다 성격이 불같기는 똑같은데 가치관이 다른 부분이 많아서 한번 싸우면 집안이 들썩이는 최악의 조합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유학길에 올라 집을 떠난지도 5년이 넘어가고 그동안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하고, 비즈니스를 하면서 직장 파벌 싸움, 비즈니스 불화 해결 등을 거쳐 하루하루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싸워야 하는 일이 너무 많은 와중에 '가족과의 싸움'은 한없이 부질없는 짓으로 느껴지게 됐다.
말, 말, 말... 말이 항상 문제지만 사실 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가족끼리 싸울 때는 말 때문에 싸우는 일이 대부분이다. 나와 아빠도 화가 나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함으로써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표현하곤 한다. 그럴 때 나오는, 아무 의미도 없고 "나 지금 화났어, " "나 지금 섭섭해, "로 대체될 수 있는 말 때문에 너무 서러웠고 그 말들 때문에 싸움이 시작됐다. 가족끼리 싸우는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도는 대부분 서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표현 방식이 왜곡돼서 부딪치거나, 또는 서로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의견의 차이를 좁힐 수 없어서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멈추고 생각해 보면 그 의도는 사랑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는데, 아무 의미 없이 뱉어진 그 말에 집중하고 화내느라 상대의 진심인 좋은 의도를 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직장과 비즈니스에서 앞에서는 최대한 고르고 골라 뱉은 좋은 말들을 하지만 교묘히 속여서 웃는 얼굴로 등 뒤에 칼을 꽂는 일들을 목격하고 직접 당하고 보니, 앞에서 하는 말들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앞에서는 웃는 얼굴로 마주하지만 뒤로는 이해관계 안에서 서로 더 가지려고 견제하고 경쟁하는 세상에서 내가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내 앞에서 가장 나에게 쓴소리를 하고 말로 상처를 주지만 사실은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말을 보지 말고 의도를 보아야 한다
사람은 정작 화가 나서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고 대부분 자신의 진짜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러서 화를 낸다. 미안해서, 섭섭해서, 억울해서, 등 화 뒤에 숨어있는 진짜 감정은 다양하다. 많은 화로 표출되는 감정이 애정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나는 부모님이 내가 한국에서 살지 않는 것에 대해 섭섭해하시면 화가 난다. 그런데 화로 표현된 감정의 껍질을 벗겨내면 나도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미안한 감정과, 같은 나라에 살지 않는 와중에 세월은 흘러가고 부모님은 나이 들어가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과 남편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지금은 미국에 있어야만 하는 내 상황에 대한 어쩔 수 없음이 내 진심인데 그런 진심을 표현하는 게 서툴러서 감정이 화로 표출된다.
자신이 감정표현에 성숙하지 못해서 화를 내는 이런 사람이라면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면 말을 보지 말고 의도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대가 화를 내기 시작하면 '섭섭한가 보다, 미안해서 저러는구나'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면서 화나 말에 중점을 두지 않고, 화 뒤에 숨어있는 진짜 감정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면 사실 서로 감정이 상할 일은 별로 없다.
상상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의도를 생각해야 한다
이 부분은 연애를 하면서 깨달은 것인데, 우리는 상대의 어떤 행동이나 말을 보고, 상상할 수 있는 제일 나쁜 의도를 생각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친구가 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다른 일에 몰두해 있느라 전화가 온걸 못 봐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최악의 이유인 '나를 피하느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많은 가까운 사람들 간의 싸움들이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데서 비롯된 피할 수 있는 싸움들이다. 그리고 특히 연애할 때에는 상대방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변명하고 미안해하는 반응을 보고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서 일부러 최악의 의도를 상상하고 화를 내는 게 습관화된 사람들도 있다. 정말 어리석은 에너지 낭비다. 가까운 사람이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믿으면 싸울 일중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화가 나는 일들도 관점의 전환으로 예방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상대방의 입장이 돼서 생각해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들은 세상에 많이 없는 것 같다. 사소한 일을 예로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이 지하철에서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가서 일시적으로 화가 난다면 나는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 '너무 골똘히 생각하고 있어서 앞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고 몰두했나 보다'라는 식이다.
이럴 때 내가 쓰는 좋은 방법은 '저 사람이 만약 내 아들/딸이라면 나는 저 행동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자식이 없지만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쁘다고 하니, '내가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내 아들/딸이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면, 분명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머릿속으로 그 사람에게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만들어 준다. 그렇게 하면 그 행동이 별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그 사람에게 화가 날 일이 전혀 없어 보인다.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도 납득할 만한 변명거리를 찾을 수 없는 드문 경우에는 최후의 보루로 '화나는 감정은 내 몸과 마음만 축나게 할 뿐이야.'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일을 화낸다고 뒤엎어지는 게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흘려보내려고 한다.
말, 그리고 대인관계에 도움이 됐던 책들 Top 3
<인간관계론> - 데일 카네기
<말 그릇> - 김윤나 (세바시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QJzVFUbGU4)
<돈을 부르는 말버릇> - 미야모토 마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