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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Oct 12. 2020

한국 사람 답지도 미국 사람 답지도 않은 이방인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

좋게 말하면 세계인, 사실은 이방인


보통 사람들은 집이나 고향을 생각하면 특정 장소나 특정 가택을 떠올린다고 한다. 내겐 '집'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곳이 없다. 지난 10년간 10번도 넘는 이사를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한 곳에서 2년 이상 살아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까지 한국, 중고등학교는 캘리포니아, 그리고 대학 이후 7년 동안 뉴욕에 살았다. 언제나 정착하지 못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한국 사람이지만 미국에서 산 시간이 더 긴, 나는 '한국사람 답지도, ' '미국 사람 답지도' 않은, 좋게 말하면 '세계인'이고 어디를 가던 이방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간다. 어떤 이들에게는 한국이 돌아가야만 하는 고향이어서이고 어떤 이들은 신분 문제로 미국에 남아 있을 수 없어서 돌아간다. 내 부모님은 중학교 때 유학을 시작할 때부터 한국이 내 마음속에 영원한 고향이자 돌아올 곳이기를 바라셔서 방학마다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게 하셨고 항상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셨고 종국에는 (?) 한국 사람과 결혼하길 바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한국에서 내가 속한 상황이 그런 거겠지만 나는 한국에 갈 때마다 내가 나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의 딸로서, 어떤 회사의 직원으로서, 10대 혹은 20대 여성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너무 많아서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나 다운 것들을 하고 싶을 때마다 "너는 정말 xx답지 않는구나" "그걸 왜 하고 싶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적으로도 한국이 내가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개인의 능력이나 역량에 따라 발전하기는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장자니까 인성이 나빠도 공경해야 하고, 능력이 아니라 연차에 따라 승진하고, 여자니까 남편을 내조하고, 더 좋은 의견이 있어도 높은 사람 앞에서는 의견을 내지 못하는 그런 유교 사상은 스스로 납득하기 힘들면 '원래 그런 거니까' 해야 하는 것들을 절대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방인의 장점


내 남편도 나와 같은 이방인이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백인들 사이에서 섞인 유일한 아시아인이라 미국인임에도 이방인 취급을 받다가 영원히 고향을 떠났고, 부모님도 제 3국에 살고 계셔서 나와 마찬가지로 집이라고 부를만한 곳이 없다. 남편은 자신이 세계인인 게 좋다고 한다. 한 가지 장소나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 어느 것이든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좋다고 한다. 남편은 개척이 체질인가 보다. 세계인의 장점은 사상이나 문화가 특정 한 곳에 굳어져 있지 않아서 세계 어느 곳을 가도 빨리 적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유연하다. 언어도, 문화도, 이미 한번 배워 봤으니 새롭게 배워야 한다면 못 할 것도 없다고 느껴진다. 



이방인의 단점


개인적으로 마음 붙일 특정 장소가 없는 삶의 단점을 꼽자면 항상 마음속 한편에 그리움이 있다. 나는 아마 평생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곳에서 한 번에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에 있을 때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때는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울 것이다. 지금은 내 삶과 일을 위해 미국에서 살기로 선택했으면서도 항상 부모님께 그리움과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방인으로써 미국에서 살면서 뭐든지 내가 개척해야 하는게 많이 힘들었다. 한국에서 자랄 때는 부모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셨지만 미국에 온 다음부터는 알려주는 사람 없이 내 삶을 내 손으로 개척해야 했다. 그래서 강해졌고 삶에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발 붙일 곳 없는 상황이 절망적이고 불안할 때도 많았다. 내가 아는 유학생들이나 이민자들은 모두 이런 외로움을 알고 있고 정착하기를 강하게 갈망하기도 한다. 나 또한 정착을 갈망하지만 나는 안정감보다는 자유를 더 갈망하는것 같다.  



이방인 천국, 뉴욕


아마도 내가 가본 모든 곳에서 가장 내가 소속감을 느꼈던 곳은 뉴욕인 것 같다. 뉴욕은 이방인들의 도시라 뉴욕 토박이들보다 이방인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아서 하나의 문화에 섞이지 않아도 된다. 세계 어느 곳에서 왔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편견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뉴욕은 지리적 장소가 아닌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문화 보다도 사상이나 꿈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인다. 


뉴욕은 내가 소속감을 느끼는 곳으로써 마음속에 항상 특별한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뉴욕에서 만난 친구들에게도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뉴욕에 오기 전에 만난 친구들은 지리적으로 같은 곳에서 생활해서 마주치고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친구가 됐다면, 뉴욕에서 친해진 친구들은 만날 사람이 무수히 많은 사람의 바다에서도 서로에게 끌려서 친구가 됐기 때문이다. 이제 앞으로 하나의 나라에서 살기보다는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나 같은 이방인/세계인들도 뉴욕 같은 이방인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소속감을 나누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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