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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Apr 07. 2021

이사 10번 이상 다니면서 터득한 중고 거래법

중고 거래, 당근 마켓, 중고 나라, 가구, 가구 쇼핑, 인테리어

지난 10년 동안 이사를 10번 이상 다니면서 매트리스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새 가구를 사 본 적이 없다.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은 기숙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가구를 썼지만, 자취하고 나서부터는 100프로 중고로 가구를 구입했다. 온라인 중고 거래 시장들은 한국에는 당근 마켓과 중고나라가 있고,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는 Craigslist와 Facebook Marketplace가 있다. 


중고 가구의 장단점

장점: 개인적으로 중고 물건을 많이 이용하는데 중고로 이용해도 좋은 물건들 중 최고가 가구라고 생각한다. 오래 이용하면 납작하게 꺼지기 시작하는 쿠션이 들어간 소파나 매트리스를 제외하고는 식탁이나 책상, 의자, 서랍 등은 몇 년 사용해도 새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중고 가구의 최고의 장점은 당연히 저렴한 가격이다. 그리고 올해 새 가구를 처음으로 사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보통 가구점에서 새 가구를 주문하면 제작/배송기간이 길게는 4달까지 걸린다. 미국이 특히 느린지는 몰라도 주문 후에 제작을 시작하는 가구들도 많고 해외에서 배를 타고 와야 하는 가구들도 있다. 중고로 가구를 사면 서너 달 동안 가구 없이 살아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다.


단점은 가구들을 한 번에 전부 구입할 수 없고 따로따로 구입해야 해서 수고스럽고, 새 가구를 살 때와는 달리 중고 가구는 직접 가지러 가거나 배달책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마음에 드는 가구를 찾는 과정이 수고스럽다.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못한 방법이다. 


가구 찾기

Craigslist와 Facebook Marketplace (혹은 한국의 중고나라나 당근 마켓)에서 가구를 보면서 사람의 보는 눈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단 걸 알았다. 내 눈에 예뻐 보이는 가구가 저렴하게 나오면 다른 사람 눈에도 예뻐 보이고 저렴해 보인다. 그런 가구는 빨리 팔린다. 그래서 나는 예쁘고 저렴한 가구를 가장 먼저 발견하기 위해 항상 최근 업로드 순으로 정렬해서 오늘 나온 가구들을 전부 확인하고 마음에 들면 바로 메시지를 보낸다. 


협상 

예쁘고 저렴한 가구는 협상하지 않는다

중고 거래에서 협상이 빠질 수 없다. 예쁜 가구가 저렴하게 나온 경우 협상을 하지 않는 걸 추천한다. 왜냐하면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메시지를 보냈을 텐데 더 싸게 사려고 들면 판매자가 기분이 상해서 다른 사람에게 팔고 싶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사고 싶은 물건의 판매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된다. 


협상해도 좋은 경우

예쁜 가구가 저렴하지 않은 경우, 협상을 잘하면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협상을 할 때 절대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면 안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돈을 더 준다고 해도 팔기 싫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서 싸게 팔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게 더 현명하다. 


메시지를 보낼 때 "가구가 정말 예쁘네요" 혹은 "취향이 멋지시네요" 같은 말로 시작하면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왜 나에게 그 가구를 싸게 팔아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면 된다. 심리적으로 설득을 할 때, 별로 말이 되지 않는 이유라도 "(주장)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유)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만으로 설득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고 한다. 나는 다음의 이유들을 자주 이용한다.


"가구가 정말 마음에 들지만..."

- 00를 사려고 저축해 놓은 돈이 00 뿐입니다. 고려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배달비를 더하면 제게 부담스러운 가격입니다. 


협상에 도움되는 말들

단연코 협상에 가장 도움되는 말은 "00 가격도 괜찮으시다면 오늘이나 내일 편하실 때 당장 가지러 가겠습니다"이다. 가구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빨리 파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일단 팔기로 마음먹었으면 빨리 눈 앞에서 사라지길 원한다. 많은 경우, 이미 새 가구들을 사놓고, 팔 가구들을 옆으로 치워놓기 때문에 필요 없는 가구가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팔리지 않으면 않을수록 이 거추장스러운 것 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가구를 팔지 않고 그냥 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큰 가구일수록 더 원가에 비해 저렴하게 판매된다. 팔리지 않으면 판매자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반면, 작은 의자나 테이블의 경우 구석에 치워놓아도 크게 거슬리지 않아서 오래 기다려 제 값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한 사람이 여러 가구를 파는 경우 여러 개를 묶어서 가져가면 파는 입장에서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가격을 깎을 수 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가구인데 협상을 거부한다면

너무너무 마음에 드는 가구인데 가격이 너무 비싸고 협상을 거부할 때 내가 쓰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판매자는 100만 원을 원하는데 합리적인 가격이 70만 원이라면, 친구에게 부탁해서 70만 원보다 훨씬 낮은 가격, 예를 들어 40만 원을 제시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협상이 통하지 않는 고집 있는 판매자라고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70만 원이 괜찮은 가격으로 보이게 된다. (혹은 내가 40만 원을 제시하고 거절당한 후, 친구에게 부탁해서 70만 원을 제시해서 산다.) 이렇게 해서 마음에 드는 중고 물건을 원하는 가격에 구입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가격이 너무 높아서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살 수 없을 때, 그리고 올라온 지 며칠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을 때만 먹힌다. 100만 원에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만한 물건이면 이 방법으론 절대 살 수 없다.


프로 팁: 협상에 반응하는 사람과 반응하지 않는 사람

오랜 시간 중고 가구를 사면서 협상에 반응하는 사람과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됐다. 사진과 설명만 읽어 봐도 걸러낼 수 있다. 자신이 판매하는 물건의 원가와 물건에 대한 설명을 (사용 기간, 상태, 판매처) 길고 자세하게 써 놓고 사진도 여러 구도에서 찍는 철저하고 꼼꼼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협상이 잘 되지 않는다. 이들은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제대로 판매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가진 물건의 가치를 잘 알고 있고, 아마도 많은 생각과 조사 끝에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가격을 제시했을 것이다. 그래서 깎아달라는 말을 하면 기분이 상할 확률도 높다. 


반면에 사진도 대충 찍고 설명도 대충 올려놓은 사람들은 협상에 잘 반응하는 편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제 값을 받아내겠다는 생각이 없을 확률이 높다. 사진이 한 장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데, 많은 구매자들이 사진이 한 장밖에 없으면 신뢰가 가지 않아서 문의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에게 문의해서 협상하면 받아 줄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고급 가구를 판매하는 사람일수록 협상에 반응할 확률이 높다. 고급 가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경제력이 있다. 그리고 경제력이 있으면 있을수록 돈보다는 시간이 중요해서 열심히 협상해서 가구를 높은 가격에 되팔겠다는 의지가 약하다. 바빠서 중고거래를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일 수도 있고, 가구를 팔아서 돌려받는 돈이 중요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이들에게는 취향을 칭찬하고 가구를 빨리 가져가겠다는 말들이 더욱 도움이 된다. 나는 언젠가 아주 대충 찍어서 흐릿한 사진 안의 소파의 어렴풋한 모양이 예사롭지 않아 보여서 판매자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가보니 럭셔리 아파트였다.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 판매자가 처분하려고 하는 가구들은 사진에 나온 소파 말고도 정말 많았고 전부 고급이었다. 남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하기 위해 이 아파트를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때 그녀에게 900만 원 상당의 가구들을 50만 원 정도에 구입해서 5년째 잘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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