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준희 May 25. 2020

9. 내가 의대나 법대에 가지 않은 이유

그리고 가지 않은걸 후회한 이유 

나는 태생부터 반항아로 태어난 것 같다. 나는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하는 게 너무 힘들다. 모든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내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고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그것이 내 삶이 힘든 이유이고 내가 행복한 이유인 것도 같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한 과학 영재 고등과정을 최상위권으로 졸업했을 때 가족들도 내가 의사가 되길 바랐고 실제로 고등학교 동창들 중 상당수가 의사가 됐다. 그렇지만 나는 의사가 되지도 않았고 동창생들이 많이들 선택한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되지도 않았다. 아직 어린 학생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 고민도 해보기 전에 공부를 잘하는 사람에겐 당연한 듯이 그 두 옵션밖에 주어지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가 부담스럽고 숨 막혔다. 


고등학생 때 꿈이 많던 시절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세계 곳곳에서 온 다양한 인재들을 만나서 더 큰 세상을 볼 줄 알았다. 인권에 관심 있는 학생, 공룡에 관심 있는 학생, 만화에 관심 있는 학생들 등등이 모두 모여서 지적 탐구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실상은 대학은 고등학교보다도 좁은 세상이었다. 아무도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정해진 길들 중 택 1을 하는 분위기였다. 그 5개의 길들은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교수, 금융인이었다. 결국 대학도 비영리이긴 하지만 기업이고, 졸업생들이 고소득이어야 대학의 위상이 올라가기 때문에 대학의 인재 양성은 사실 (고소득) 인재 양성이었다. 고소득 직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관심사는 권장되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도 시키는 대로 공부를 하고, 자유를 얻을 줄 알았던 대학에서도 세상에서 준 5개의 옵션 중에 택 1을 해서 그 길이 시키는 대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 너무 숨 막혔다. 


개인의 생각과 개성은 무의미한 것일까? 주어진 길대로 사는 게 삶이라면 그다지 열심히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정말 협소한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단지 공부하나 잘했다는 이유만으로 난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거란 자만심에 가득차 있었고 절박함이란걸 몰랐다. 내가 살아온 세상은 그렇게 좁은 세상이었다. 내가 당시에 유일하게 할 줄 알았던 것이 공부였는데 몇 년의 방황으로 그것마저 무용하게 만들었단 걸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때부터 탄탄대로로 보였던 내 길이 틀어지기 시작해서 거의 10년에 달하는 방황이 시작됐다. 과학 영재 고등과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나는 대학 내내 단 한 학기의 과학수업도 듣지 않았다. 목적 없이 흥미가 가는 과목들을 듣고 (농경축산업, 조각학, 동화의 문학적 분석 등..)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해서 아무 데나 되는대로 취직했다. 유명한 회사도, 직종도 아니었고 당연히 연봉도 아주 낮아서 내 벌이로는 집세도 못 낼 정도였다. (그마저도 잘 못해서 나중에 잘렸다.) 동창생들이 보기에 '실패작'으로 보였을 것이다. 아주 친한 대학 친구들 7명 중 3명이 의사가 되고, 1명이 변호사가 되고, 2명이 박사가 된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주위에서 보기엔 실패작이었다. 


'저는 남들이 정해진 길을 갈 때 꿈을 좇아서 성공했어요!'라는 아름다운 성공스토리면 좋겠지만 나는 사실 의사가 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세상이 나에게 주는 길을 뛰어넘은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기 위해서 의사라는 길로 가는 다리를 불태웠지만, 나는 새로운 어떤것에도 몰두하지 않았다. 나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걸 바꾸기 위해 노력은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루하루 허송세월을 보내고, 새벽 6시에 자서 오후 서너 시에 일어나서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면서 살이 찌고 눈에서 총기를 잃었다. 어차피 되는대로 취직해서 이렇게 살 거라면 차라리 세상의 존경을 받고 돈도 잘 버는 의사가 될걸 하는 후회를 했고 이도 저도 아닌 나 자신이 싫었다. 나는 세상의 시선에 취약하고 돈도 필요한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두 가지를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호기롭게 박차버린 길이었지만, 세상의 시선과 돈만 생각하더라도 예전엔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의사의 길을 갈 이유는 이제 충분해 보였다. 구차하지만 그게 나라는 사람이었고 나의 현실이었다. 만약 대학교 때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보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최선인 길을 선택해서 그 길을 정복하고 나서 그다음에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늦지 않다는 어설픈 조언을 해 주고 싶다. 


몇년 후 운과 노력이 모두 따라주어서, 특히 운이 많이 따라주어서, 리바운드할 수 있었다. 바닥까지 내려가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그리도 원했던 자유와는 점점 더 멀어질 뿐이라는게 명확했다. 그래서 나는 내 주위 사람들이 꺼리는 것들도 할 수 있었다. 백수, 음식 배달원, 가구 공방 조수, 중고물품 장사, 학원 선생님 등 여러 직업을 거쳐 다시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처음 영어를 배웠던 그때처럼 초심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지식, 특히 프로그래밍과 금융지식을 중심적으로 익혔다. 프로그래밍과 금융 모두 처음엔 전혀 모르는 분야였지만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어차피 바닥인 내가 전부 흡수하지 못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도 잃을 게 없으니 물 붓는 방법이라도 배우자는 마음으로 편하게 천천히 했다. 지금은 데이터 과학자겸 투자자가 되었다. 


세상에 밑 빠진 독은 있어도 밑 빠진 지식은 없고 만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는 있어도 만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직업분야는 없는 것 같다. 방황을 시작한 지 10년 만인 작년 즈음부터 의사 변호사 못지않게 돈도 벌고 있고 무엇보다 일하는 시간이 매우 짧고 즐겁다. 사람 마음은 간사해서 지금은 결과적으로 리바운드 했다는걸 알고 생각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도 방황을 선택할 것 같다. 누구에게나 방황의 시기는 찾아오고 또 필요한데 방황의 시간이 이를 수록 돌아가는 길이 더 길고 험해지는 것 같다. 친구들 중 기나긴 전문직 공부를 마치고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친구들이 있다. 이 친구들은 방황을 하더라도 돌아올 곳이 있으니 훨씬 '안정적인' 방황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방황이 안정적인 만큼 절박함은 줄어들 것이다. 안정적임은 삶이란 배를 흔들림 없이 받쳐주고, 절박함은 삶이란 배의 노를 젓는 가운데 어떤것이 더 중요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