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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Apr 26. 2020

8. 굳이 미국까지 가서 코리아타운에 갈 필요가 있냐

대학생 때부터 뉴욕이나 엘에이에 방문해서 친구들을 만날 때면 십중팔구 코리아타운에서 만나기로 결정지어졌다. 지금이야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미국의 k-town 들도 덩달아 세련돼져서 외국인들도 자주 k-town의 깨끗하고 멋진 음식점과 카페들을 찾게 됐지만 10년 전에 내가 대학에 갈 때까지만 해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70-80년대 이민자들 손으로 세워져서인지 항상 한국보다 20년은 뒤처져 있는 인테리어와 간판을 걸고, 그 아래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불량스러워 보이는 젊은이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세련되지 못한 분위기에 한몫을 더했다. 맛있는 한국 음식이 그리워서 가면서도 '굳이 뉴욕이나 엘에이까지 가서 코리아타운에 갈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재밌는 것은 뉴욕에 사는 지금은 한국음식이 예전처럼 그리운 것도 아닌데 오히려 예전보다 더 자주 코리아타운을 찾게 되었다. 뉴욕에는 단 하나의 골목만 해도 갈 수 있는 레스토랑이 10개가 넘을 정도로 매년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인테리어를 장착한 힙한 레스토랑들이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식사를 어디서 시작하던 정신을 차려보면 끝은 항상 k-town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다고 k-town의 가격이 싼 것도 아니다. 뉴욕 k-town의 소주 한병의 가격은 $12-20 정도인데, 거기다 별도 부가세와 팁을 더하면 한 병에 $15-$20 이상이 될 수 도 있다. 소주 1병에 안주 1개만 시켜도 4~5만 원이 거뜬히 넘는다. 그마저도 병이 비면 재빨리 치워버리고 더 안 시킬 거면 나가라는 눈치를 받아서 항상 의도한 것보다 더 취한 채로 나가게 된다. 


비이성적인걸 알면서도, 싸지 않은 가격을 지불하면서 한국의 동네 술집만도 못한 k-town의 술집으로 나를 포함한 수많은 유학생들과 직장인들과, 심지어 뉴욕에 방문한 한국 연예인들까지 발걸음이 향하는 이유는 일종의 귀소본능 같은 것이다. 광활한 미국 땅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인 뉴욕에 살면서 나는 겉도는 기분이 든다. 매일 아침 관광명소인 뉴욕 증권거래소를 지나 대리석 바닥과 경비원들이 깔린 건물에 출근하지만, 퇴근 후에는 심심치 않게 쥐 구경을 할 수 있는 지하철을 지나 터무니없이 비싼 세를 내는 작은 내 공간에 몸을 뉘이면서 나는 뉴욕의 화려함과 어울리지 않음을 실감한다. 화려한 뉴욕 안에서 내 삶은 상대적으로 한없이 초라하다. 


그래서인지 술에 조금 취하면 푹신한 가죽 의자가 놓여있는 재즈바의 잘생긴 바텐더가 만들어준 칵테일보다 k-town의 초라한 간이의자에 앉아 소주를 마시는 게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코리아타운과 나는 한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어중간함과, 화려함 속에 초라한 쓸쓸함이 닮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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