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미니마니모 진로결정 시집이냐 박사냐 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시집이나 가지 대학원은 무슨 대학원이냐?" 내가 대학원에 합격했을때 외할아버지가 못마땅해하시며 하신 말씀이다. 친가, 외가를 통틀어서 내 대학원 진학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나 과가 별로여서가 아니었다. 세계적인 명문대의 유망한 학과였다. 그런데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걱정스러워 한 것은 내 나이가 너무 많아지는 것과, 내 학벌이 너무 좋아지는 것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했을때 내 나이는 만 24살, 한국나이로 25살 이었다. 막 대학을 졸업해서 제대로된 사회 경험도 없는 햇병아리지만 어른들 눈에는 '시집가기 딱 좋은 나이,' 더불어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아 걱정스러울 좋은 나이'로 보였나 보다. 비단 어른들 뿐만은 아닌게 내 또래의 사촌도, "여자가 학벌이 너무 좋으면 남자들 기죽여서 시집가기 힘들어. 그리고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야" 라고 했다.
1년 후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한번 고비가 왔다. 집안 어른들은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박사과정을 밟으며 결혼을 한 후에 소일거리 삼아 강의를 나가길 원하셨다. 그 바램에 나는 거부감을 느꼈다. 한국에 가면 내 인생 일대의 최고의 숙제이자 목표인 시집을 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 뻔했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아니라 집안 분위기에 빨려들어가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우리집은 그런 집이었다. 집안 어른들은 누누히 여자로 태어나서 최고의 삶은 남편 잘만나서 남편을 잘 내조하고 예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부수적인 것들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한 공부도 어른들 눈에는 남편을 잘 내조하고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똑똑한 여자라는걸 보여주기 위한 과정 정도에 불과했다. 내 진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살 두살 더해가는 내 나이나, 해가 갈수록 떨어지는 피부 탄력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엄마가 나에게 은근히 말씀하셨다. "몇년 일해보는 것도 좋은것 같아. 내가 일을 해보지 않아서 그 부분이 후회되더라. 너는 그런 후회를 안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어른들이 원하는 내 삶을 이미 살아본 사람이다. 엄마는 이화여대를 졸업하자 마자 결혼했다. 그리고 아주 훌륭한 현모양처의 표본인 삶을 사셨다. 그 길을 이미 가본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하는 조언을 나는 얼른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취업준비를 시작해서 곧 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승승장구 했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기면서 그 어떤 남자를 만나는 것 보다 더 큰 희열을 느꼈다. 지금까지 한국에 돌아가서 박사과정을 밟지 않은걸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