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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Apr 20. 2020

5. 유학 1년만에 일등이 되다

내가 지금까지 한 것들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게 처음 유학 와서 보낸 1년이었다. 준비 기간이 없이 계획에 없던 유학을 우연히 시작했고, 학교 공부를 따라잡지 못하면 입학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압박감 속에 탈모와 비만을 겪으며 매일 새벽까지 공부했다. 그래서 나는 중고등학교 때의 추억이 거의 없다. 교과서의 모든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서 읽으려면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길 3개월,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대화의 맥락이 들리기 시작했고 1년 후 수업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2년 후 영어가 유창해졌다. 유학 1년 후 한 학년에 30명뿐인 학교에서 종종 1등을 했고, 2년 후 한 학년에 몇백 명인 고등학교에 진학한 다음에도 계속 1등을 했다. 중학교 때 영어를 못해서 모두에게 무시당하고 학교 대표 바보였는데 고작 2년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모태 모범생으로 취급받았다. 선생님들이 과제에서 내 이름만 보고도 A를 줄 정도였다. 


나는 한국에서도 초등학교 때 한번 1등 한 것 빼고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1등을 하는 학생이 된 이유를 당시에는 머리가 좋아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영어를 못하는 시간 동안 개고생을 한 것 때문이었다. 


보통 미국인 중학생이 학교 공부를 하는데 1의 노력이 들어간다면, 영어를 못하는 나에게는 100의 노력이 들어갔다. 영어 능력이 미국인에 비해서 100분의 1도 안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내 능력이 보통 미국 학생의 능력과 비슷해졌는데, 나는 보통 학생보다 100배 더 노력할 수 있는 학생으로 길들여졌던 것이다. 고등학교의 공부가 중학교 공부보다 5배가 어렵다고 하면, 보통 고등학생은 5배 높아진 5의 노력을 하는데, 나는 전혀 업그레이드하지 않아도 이미 100의 노력을 할 수 있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20배 더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래서 1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지만 처음 미국에 왔던 중학교 1-2년 동안만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다. 중학교 때 개고생을 한 경험으로 고등, 대학, 대학원 과정을 크루즈 컨트롤하듯이 별다른 노력 없이 쉽게 미끄러지듯 마쳤다.


개고생을 한 단기적인 결과는 대학 진학이었지만, 장기적인 효과는 더 컸다. 그 어떤 학교 타이틀보다 더 값진 것은 절박해 본 경험이고 개고생을 해본 경험이었다. 나는 영어를 못하고 똑똑하지도 않은 내가 언젠간 영어를 배워서 대학을 갈 수 있을까?라는 막막함과 절망에 압도됐지만 퇴학의 불안감이 항상 쫒아오는 상황에서 포기라는 옵션도 없었다. 나에게는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래서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이게 최선인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었다. 솔직히 그렇게 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했다. 그런데 상황은 달라졌다. 영어가 들렸고, 말할 수 있게 됐고, 그렇게 되니 공부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대학은 갈 수 있을까 고민한 지 몇 년 만에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했다. 


몇 년 만에 무언갈 열심히 꾸준히 해서 상황을 바꿔본 경험은 내 인생을 바꿨다. 한번 해보니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계속하면 반드시 바뀐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판 모르는 분야라도 시간과 노력을 쏟으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내 노력으로 모든것이 나아질 수 있었다. 공부를 잘하게 된 다음에는 외모를 바꿨다. 20킬로를 빼서 못생긴 편에서 예쁜 편이 되었다. 좋은 첫인상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성격도 내성적이고 아웃사이더 적인 성격에서 (얼핏 보면) 외향적이고 쾌활한 성격으로 바꾸었다. 친구들이 많아졌다. 진로도 바꾸었고 전공과 아무 상관 없는 투자 공부를 해서 주식 투자를 배우고, 부동산 투자를 배워서 재산을 형성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 습관인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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