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여신 곤도 마리에의 책 3권, <정리의 힘>, <정리의 기술>, 그리고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삼일에 걸쳐 연달아 읽었다. (이 중 <정리의 기술>이 가장 좋았다. )넷플릭스 쇼를 통해 곤도 마리에를 봤을 때 인형 같은 외모에 상냥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책들을 읽고는 그녀의 빛나는 열정에서 나오는 카리스마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정리는 그녀의 직업이고 취미이며 생활이었다. 이 책들을 읽고 나서 그녀의 열정이 나에게도 전염됐는지 정리하는 사람이 될 충분한 이유를 찾았다.
정리하는 이유
무엇을 하든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하기만 하면 행동이 따르기는 쉽다. 곤도 마리에에게 정리는 축제와 같은 즐거운 행위다. 그녀에게 정리가 즐거운 이유는 정리가 '이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리를 시작할 때 그녀는 가장 먼저 '이런 집에 살고 싶다' 하는 드림하우스를 상상하고 원하는 풍의 인테리어 사진을 한 장 찾기를 권장한다. 그다음 '버리기'를 통해 자신이 가진 물건들 중 행복감을 주는 물건들만 남기는 게 순서다. 그 후 물건을 구입할 때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에 맞추어 구입해서 결국은 설렘과 행복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게 궁극적인 정리의 목표다.
"정리 = 미니멀리즘" 공식은 틀렸다
흔히 그녀가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녀가 버리기의 달인이기는 하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정리를 연구하며 버리기부터 시작해서, 필요한 물건이나 가족의 물건까지 스리슬쩍 버려 버려서 혼이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미니멀리즘이 적은 물건으로 심플한 삶을 추구하는데 비해 그녀는 물건을 최소화하는 걸 권장하기보다 '공간이 주는 만족감'을 최대화하는 걸 추구한다. 어떤 이에게 최고의 공간은 미니멀한 공간이지만 어떤 이에게 최고의 공간은 맥시멀한 공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버리기만 해서는 결코 설레는 공간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버리기는 정리의 첫 단계다
그녀는 버리기를 정리의 첫 단계라고 한다. 공간은 한정적이다. 그래서 많은 물건들이 가득 차 있으면 설레고 이로운 물건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버리기는 공간을 오직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이로운 것들로만 채우기 위해서 나머지 없어도 좋을 물건들을 덜어내는 과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물건을 구입하는 바람에 설레는 공간을 만들기를 힘들어하는 바람에 정리하는 과정을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과정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렇지만 버리기는 정리의 첫 단계일 뿐, 그 단계를 지나가면 다음에는 공간에 설렘을 더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어떤 것 들에서 행복을 느끼는가
곤마리 정리법을 하다 보면 물건과 마주하고 이 물건이 설레는 물건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그녀가 물건을 남기는 기준이다.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설레는 것들이 무언지를 물어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로 자신의 공간을 채우는 정리가 끝나고 나면, 설레는 순간들이 더 많아진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자신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정리를 하다 보면 작은 작신감이 생긴다. 이 작은 변화는 자기 만족감을 높여주고 자신을 전보다 더 좋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생에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순간들이 늘어난다. 그래서 정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녀의 구체적인 정리법들도 정말 도움이 되는 팁이 많았지만 정말 도움이 된 것은 '왜 정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은 것이다. 그녀도 정리는 90%가 마음가짐이라고 한다. 나는 앞으로 아마 평생을 정리하는 사람으로 살게 될 것 같다.
[여기부터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입니다.]
속옷을 보면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
곤도 마리에는 고객의 속옷 정리 상태를 보면 고객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속옷은 밖으로 보이지 않는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일수록 설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래지어와 팬티는 특히 특별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고, 서랍 한 칸을 그들에게 내어주고 보는 것 만으로 설렘을 느낄 수 있게 백화점 진열장처럼 예쁘게 진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10년 전 대학교 때 연말 세일로 떨이로 산 브래지어와 팬티들을 아직도 입고 있다. '예쁘진 않고 낡았지만 아직도 잘 맞고 적당하구먼, ' '어차피 남들 눈엔 보이지도 않는데 뭐' 라며 '적당하다'라고 믿고, 아깝다고 버리지 않았다.
적당히의 함정
곤도 마리에가 바로 보았다. 나의 '적당히' 식의 삶은 속옷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남을 위한 선물을 사거나, 남을 대접할 때는 최고로 하려고 노력하면서 나를 위한 소비를 할 때는 항상 '적당히'면 만족했다. 예를 들어 같은 옷이 여러 컬러로 나오면, 원하는 컬러의 옷이 아니라 세일하는 컬러의 옷을 살 때가 많았다. 혼자서 끼니를 때울 때도 맛은 따지지 않고 영양면에서 '적당히' 만족스러운 저렴한 곳을 찾았다. 나를 대접하지 않고 항상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따졌다.
나는 나 자신을 대접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그 결과 나의 공간과 삶은 곤도 마리에가 책에서 이야기한 '버리기만 해서 설레지 않는' 상태가 돼 버렸다. 내 삶에 불필요한 부분은 거의 없었고 정말 효율적으로 살고 있었지만 설레게 살고 있지는 않았다. 물론 돈을 더 지불하고 진짜로 설레고 원하는 것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적당한 걸 넘어선 자기만족을 느끼고자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게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나 자신을 대접하지 않는 속마음이 숨어 있었다. 내심 나의 작은 만족감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은 불필요한 욕망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무시해 오고 있었다. 내 만족을 높일 자원이 있으면 자기만족보다는 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곳에 투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스스로를 대접하는 건 무한히 뒷전으로 미루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대접하지 않은 대가로 생산성과 발전이 늘어나긴 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만족감과 설렘은 결여돼 있었기 때문에 공허함을 없앨 수 없었다.
나를 더 대접해 보려고 한다
이제는 이 방식을 바꿔보려고 한다. 오직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삶의 작은 부분들에서부터 행복을 찾을 것이다. 적당한 게 아니라 나에게 최고의 설렘을 주는 것들을 골라서 삶을 채워나갈 것이다. 천천히 정리 정돈하면서 찾아보려고 한다. 오늘은 나중에 선물할 때 쓰려고 아껴두었던 예쁜 종이봉투를 꺼내어 잘라서 상자로 만든 다음, 그 안에 비닐봉지들을 접어 정리했다. 평소에 보기 싫었던 비닐봉지들도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예쁜 상자에 담겨 있으니 볼 때마다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정리가 이렇게 명상처럼 힐링이 되고 자신을 대접하는 일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