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냉장고 상황을 지적하는 남편과 크게 싸웠다.
지난 일요일 오전, 남편과 나 둘 다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생각해 보니 아침도 걸렀고 마침 시간이 11시라 점심을 주문하던지 식사 준비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길래 물었다. "점심은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으니 생각 안 해봤다고 한다.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거군' 깨닫고 일 시작 전에 만들려고 냉장고에서 며칠 전에 해동해 두었던 연어를 꺼내서 "연어 괜찮지?" 했는데 냄새가 좋지 않았다. "상했네, " 하고 버리니 남편이 짜증을 냈다. 남편이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생연어가 있길래 빨리 먹지 않으면 상하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데 역시나 상했네! 냉장고에 먹지 않은 음식들이 왜 이렇게 많아?" 라며 갑자기 하려던 일은 안 하고 냉장고를 뒤져서 음식들을 꺼내면서 냉장고 정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내가 화난 이유
요즘 남편은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고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도 전혀 모른다. 요리를 좋아하지 않고 매일 같은걸 먹어도 상관없는 내가, 코로나 이후로 몇 시간마다 돌아오는 끼니를 차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남편은 조리와 보관이 간편한 탄수화물보다는 단백질과 야채 위주로 식사해야 해서 손이 많이 간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 내 몫으로 받아들이고 레시피도 찾아보면서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2인 가구이다 보니 음식들이 조금씩 남아서 버리는 일이 생기는 걸 불평하다니 참을 수 없었다.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부엌 찬장 문을 쾅 닫았다. 얼마 후에 남편이 내 눈치를 보며 점심 먹으라며 쟁반에 음식을 데워 왔지만 그걸 먹고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나가서 저녁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저녁에 남편이 준비한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했다. 남편은 자기가 연어에 대해 한 한마디 불평에 비해 내 반응이 너무 격해서 놀랐단다. 나에게는 요리가 즐거운 일이 아닌데, 우리 부부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는 요리가 온전히 내 몫이란 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 독박 살림을 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힘들게 노력하고 있는데 냉장고에 대해 지적하니 얼마나 언짢았는지 말했다. 참여하지 못할 거면 감사하질 못할망정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왈가왈부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더불어 자긴 참여하고 싶어도 도저히 시간이 없다고 요리사를 고용하자고 했다. 남편은 자기가 바빠질수록 내가 자기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자아를 실현하지 못하고 평생 자신을 원망하는 게 가장 큰 두려움이라고 했다. 2인 가구가 무슨 요리사? 웬 사치인가 싶었다. 연어 한 덩이 상한 것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드는 요리사를 고용하자는 걸 보면, 남편이 연어에 대해 이야기한 건 내가 살림이 낭비스러운 걸 지적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 1년간의 변화
남편과 내가 만나는 동안 서로 각자의 일을 하고 동등한 집안일을 하는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지난 1~2년간 남편의 일이 많이 바빠지면서 자신의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남편의 일 이외의 모든 걸 맡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가 없어졌다. 원래 나는 꾸준히 저축해서 하고 있던 부동산 투자를 점점 늘려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남편의 수익이 늘어나면서 남편의 일에 비해 나의 직장이나 부동산 투자 수익이 비교적 미미해졌다. 수익은 미미하더라도 시간과 힘은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차라리 내가 일을 중단하고 그 시간에 남편의 짐을 덜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직장 일은 계속하되 부동산 확장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저축보다 지출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장점으로 여겼던 검소함도 우리에게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아낄 수 있는 모든 걸 아끼려 하는데, 아끼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예를 들어 바쁜 사람은 지하철과 택시가 비슷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택시를 타서 체력을 아껴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게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단 걸 알았다. 돈을 아끼는 건 대신 시간과 체력이 필요한 일인데, 이제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때로는 저축보다 지출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걸 배우려고 노력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쉽지 않다. 바닥에 지폐가 떨어져 있는데 줍지 않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예전에 경제학에서 기회비용에 대해서 배울 때 빌 게이츠가 100불짜리 지폐를 떨어트리더라도 그걸 줍는 시간에 자기 갈길을 가서 할 일을 하면 100불보다 돈을 더 벌기 때문에 줍지 않는 것이 이득이라는 우스갯소리 반, 진담 반의 말을 들었었다. 그런데 100불 지폐가 떨어지는 걸 보고도 줍지 않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처음 이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몇 년간 세웠던 계획이 중간에 뚝 끊겨버리고, 갑자기 (남편의 수익이 적었던 예전에는 우릴 먹여 살려 주는 고마운 존재였던) 내 일이 우리 가정에게 중요하지 않아지고, 내 가장 큰 장점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내 시간을 예상하지 못한 곳에 저당 잡힌 게 황당하고 불편하고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건 우리 부부는 성장 중이었고 계획이 바뀌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새로운 생활이 안정될 때까지의 성장통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성장통이 힘들다고 성장을 거부할 수는 없다.
남편은 내가 1년 전 성장통에 힘들어했던걸 기억하고 내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느라 행복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닥친 내 불편함만 생각하느라 남편의 마음을 내식대로, 나만 불편하고 남편은 내 도움을 받는다고, 해석했던 것 같다. 사실 남편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물이 코까지 차오르는데 떠있으려고 하는 중이라고 설명할 정도로 독박 살림을 하는 나보다 훨씬 더 바쁘다. 바쁘고 도움이 필요한 와중에 자기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나 또한 성취감을 느끼면서 살기를 바라는 게 고마웠다. 남편은 이제 내 살림에 대해 왈가 왈부 하지 않기로 하고, 나는 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면 남편을 원망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다툼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