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 전 남편과 나는 유럽에 있었다. 봄에 우리의 첫아기가 태어나는데 그 후에는 여행 가기가 힘들어질 테니 출장을 기회로 태교여행 삼아 런던과 파리에 방문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한 달 후 지금, 편안하게 여행하던 한 달 전과는 마음 상태가 크게 바뀌었다.
갑자기 가계에 큰 구멍이 생기다
남편은 지금쯤 3~4억 원의 2021년 상여금을 기대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기대라기보다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12월 초까지만 해도 2021년의 성과가 워낙 좋았고 12월 한 달 동안 금융시장에 별다른 일이 일어날 확률은 낮아 보였다. 대개 연말 동안은 주식 시장도 쉬엄쉬엄 흘러가고 오히려 연말 동안 소비가 높아지기 때문에 주식이 크게 내려가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2022년을 단 2주 정도 앞두고 미국 연준에서 금리인상을 발표하면서 성장주들이 곤두박질쳤다. 남편의 포트폴리오는 대부분 성장주였다. 2주 사이에 11개월간의 성과가 몽땅 지워지면서 상여금이 사라졌다. 남편은 2022년이 밝자마자 직원들의 보너스와 여러 사업 지출들을 지불해야 했는데 우리의 가계에 1~2달 사이에 값아야 하는 3억 원 이상의 큰 부채가 생기고 말았다.
지금까지 저축한 건?
물론 우리는 저축을 해 왔다. 그런데 우리는 저축도 주식과 암호화폐로 해서 현금은 눈곱만큼만 가지고 있었다. 주식저축은 당연히 현저히 줄어들었고, 여차하면 암호화폐를 현금화하려 했는데 암호화폐 시장도 주식시장과 함께 곤두박질쳤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게는 부동산이 있다. 아직 부동산 가격은 몇 년 새 올라간 그대로다. 그런데 부동산은 유동성이 낮고 세입자가 살고 있어서 1달 이내에 현금화하기 힘들다. 급매로 헐값에 내놓으면 큰 손해를 보겠지만 현금 바이어를 찾을 수 있긴 하겠다. 지난 3~4년간 주식이 오르는 동안 내 주종목이었던 부동산은 많이 오르지 않아서 부동산 투자를 괜히 했다고 투덜댔었는데 부동산이 이럴 때 마지막 보루가 될 줄이야.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꼈다. 그나마 남아있는 부동산도 연준에서 발표한 대로 2022년에 3회에 걸쳐 금리가 오르게 되면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다. 지금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집이 있는데 완공되면 팔려고 했던 마음이 급해졌다. 막 새로 공사에 들어가려던 다른 집은 일단은 부채가 해결될 때까지 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파산하진 않겠지만, 그 경로를 이해하다
다행히 주식 형태의 저축을 현금화시키면 손해는 보겠지만 감당 가능한 액수다. 이렇게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큰 액수의 구멍이 생기고 다른 자산도 내려가면서 그 구멍을 메꾸지 못하게 되면 바로 이런 경로로 파산하게 되는 거란 걸 깨달았다. 이런 큰 구멍은 몇 달간 긴축재정을 한다고 해서 메꿀 수 있는 게 아니고 자산을 현금화시켜야만 가능해서 시장의 동태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내 자산이 내려갈 때는 다른 사람들의 자산도 내려가서 매각이 쉽지 않을 확률이 높다.
남편과 해결책으로 부채를 어떻게 메꿀 것인지 계획을 논의하고 만약의 경우 현금화시킬 자산들에 현금, 암호화폐, 주식, 그리고 마지막 보루로 부동산 순으로 우선순위를 정했다. 앞으로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목돈이 나가야 할 일이 있을 때 미래에 들어올 거라고 예상되는 돈 말고 지출할 만큼을 현금으로 먼저 마련해 놓기로 합의했다. 두세 달 뒤에 아기가 태어나는데 너무 좋기만 한 상황보다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는 긴장감도 있는 가운데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자식 교육에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진행 중인 일이지만 이번 일로 인해 많은 걸 배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