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격리 자가격리 생산성 삶
격리를 시작한 지 1달이 되었다. 슬슬 격리의 삶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해야 할 것들이 생각이 안 난다. 나태해지는 것 같아서 두렵지만 사실 삶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하루가 달리 따뜻해지는 바람을 느끼는 게 격리 이전에 추구하던 생산성 높은 삶보다 더 충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7년 전 뉴욕에 온 다음부터 일적으로 큰 성장을 했던 반면, 그만큼 성격이 바뀌었고 대인관계에 있어선 후퇴하게 되었다. 난 원래 항상 친구는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어도 적어도 사람을 진실되게 대하고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격이 급해지고, 내가 관심 가는 이야기만 하고 싶고 (생산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깊은 이야기) 아니면 집중을 잘 못하고, 발전하지 않는 삶을 인정하지 않는 꽉 막히고 답답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예전처럼 깊은 관계를 형성하기가 힘들었다. 사람을 정말 알려면 사소한 것들을 함께해야 깊게 친해지는데, 그 사소한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시간낭비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시간의 일정 부분은 발전하는 데에 써야 하고, 돈은 불리라고 있는 것이며, 불리지 않는 돈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최근 5년간 모든 휴가도 시장조사를 위한 여행이던지 세미나나 콘퍼런스 겸 여행 등, 발전을 위한 여행을 했었다. 그나마 사람만큼은 가려 사귀지 않겠다는 소신도 나도 모르는 새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격리 기간에도 온라인 수업을 듣고, 새로 투자할 거리들을 알아보고, 할 일 리스트를 만들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격리기간이 길어지면서 생산성을 추구하는 삶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생산적인 삶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외모도 좋아졌고, 돈도 벌었고, 효과적으로 자산 관리하는 법을 배워서 앞으로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자유를 빼앗기는 일이 없게 되었다. 사람들도 내 생산성을 장점으로 생각해서 호의적으로 대해 준다. 사람들은 부지런한 사람에게 존경을 느낀다. 그러나 격리기간 동안 이런것들보다 차원이 다른 기쁨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마다 창밖을 보면서 새소리를 들으면서 커피를 마시면 정말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전히 7시에 일어나지만 외출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 9시까지는 오로지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이다. 하필 코로나 19는 봄에 터졌다.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하루가 다르게 따스하다. 창밖에 있는 나뭇가지들은 모습이 변한다. 매일이 다르게 꽃이 봉우리 지고, 피고, 진다. 떨어진 꽃과 나뭇가지들이 썩어서 양분이 되고, 나무는 그 양분을 빨아들여 내년에 또 꽃을 피울 것이다. 그 나무는 언젠간 죽고 썩어서 다른 나무의 영양분이 된다. 우리도 나무에서 나온 영양분을 먹으며 살다가 나중엔 죽어서 어떤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될 것이다. 나는 특별하진 않지만 조화롭게 세상을 살아가고 언제는 죽어서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될, 돌고 도는 삶의 굴레바퀴의 하나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먹는 행위도 한층 더 즐거워졌다. 그렇게 돌고 도는 삶의 손길이 경이롭다. 한 번도 이렇게 마음을 다해서 주위를 둘러본 적이 없었다. 다른 게 아니라 이게 진짜 삶의 위대함이지 싶다.
예전에는 매력적이고 화려하고, 무언갈 이루어 내거나 가진 사람이 멋있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기 위해 사는 걸 생산적인 삶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전부 부질없이 느껴지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다. 누구나 한번 사는 인생 특별한 삶 따위는 없고 '산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는 게 진짜 사는 것인 것 같다. 순간을 살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니 모든 것이 더 즐거워졌다. 매일 예쁘지 않지만 편하고 따뜻한 옷을 장착하고, 단순히 빨래를 개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움직이는 몸에서 활력을 느낀다. 남에게 받는 인정은 의미 없다. 진짜 삶의 기쁨은 뒤뜰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