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을 기회

by 풀실

지나간 것들로 인해 괴로웠던 시절, 많은 후회를 했었다.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 삶이 달라졌을까. 그 당시 했던 선택이 맞았던 것일까.’ 이미 지나가버린,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 두둑이 남아 지독히도 나를 괴롭게 했다. 이러한 생각이 한창 나를 억누르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그래도 당시로서는 최선의 길이었어. 넌 최선을 다했잖아.” 슬프게도,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그 사람이 건넨 말은 나를 더욱 자책하며 아프게 만들었다. 당시에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이 진정 최선이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이때 알게 되었다. 성취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들로 인해 미련과 후회를 남는다는 것을. 찬찬히 내가 후회하는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난 할 만큼 다 해보았노라고 내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다른 이들의 눈은 속일 수 있었어도, 나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다른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었음에도, 내게 허락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충분히 행동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두드려보지 조차 못한 문. 그 잔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내가 아는 사람 중 한 명은, 심적으로 힘든 대학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의 뜻과 여타 다른 사유로 인해 공무원이 되길 희망했고, 휴학을 한 채 공부에 전념했다. 혼자 고립되어 있던 그 시간,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이 점점 높아지자 매우 괴로워했고, 대학으로 돌아갈 힘조차 잃은 채 방황했다. 주변의 다른 또래들은 하나둘 취업했다는 소문이 들려올 때 즈음, 용기를 내어 다시 복학했다.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삶을 나누며 마음의 치유를 받았고, 도중에 포기하려 했던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현재는 바라던 공무원은 아니지만, 본인을 필요로 하는 회사에 들어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몇 달 전, 뜻하지 않게 만나 커피를 마실 일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공부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공부란 단어를 듣자마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 이제는 정말 공부가 지겨워요. 다시는 쳐다보기 싫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씁쓸하다면 씁쓸해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었지만, 과거 그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찌 그리도 속이 후련하게 다가왔는지. 후회도, 미련도 보이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던 자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과정도 결코 녹록지 않다. 결정되지 않은 미래, 보이지 않는 길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노라면 내 안에 나를 흔드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노력들이 의미가 있을까. 이루지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 또한 이런 소리들 앞에 무너지고 괴로워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지나간 후회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나의 노력들이 내가 원하고 바라는 길로 인도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설사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후회가 남는 미래는 없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을 기회조차 또다시 놓쳐버린다면, 얼마나 통탄스러울 것인가. 또한 갈 수 있는 길은 하나가 아님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인생에서 구상하고 그려왔던 길을 걷게 되는 행운이 있을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고 해서 내가 걷게 될 다른 길이 생각보다 메마르고 어두운 곳은 아닐 것이다.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는 길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車到山前必有路 산 앞에 이르러 길을 찾으면 반드시 길이 있다.





대학 시절 배웠던 수많은 중국 시가 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생각나는 구절이다. 취업으로 막막하던 시절, 아는 중국시조가 있으면 말해보라는 면접관 앞에서 읊었던 글귀이기도 하다. 이 글이 나오는 시의 전문을 다시 한번 마음으로 읽으며, 오늘의 나에게 괜찮다는 위안을 계속해서 건넨다.









산이 다 하고 물이 다 해서 길이 없는가 했더니,

우거진 버들 너무 밝게 꽃 핀 마을이 또 있네.

산 밖에 산이 있어 산은 다함이 없고,

길 가운데 길이 많아 길은 끝없이 이어지네.

하늘 끝 저 변방 하늘엔 기러기 울음소리 쓸쓸하고,

낙엽 진 외로운 마을엔 등불만이 가물가물 보이네.

인간지사 새옹지마인지라

산 앞에 이르러 길을 찾으면, 반드시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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