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사는 삶

by 풀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인 듯하다. 단정이 아닌 추측의 어조인 것은 비교대상이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평균보다 혹은 객관적으로 생각의 양이 어떠한지 알 수 없지만, 때로는 생각에 잠겨 감정이 요동치고, 걱정이 많아져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니, 스스로 생각하기에 생각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나의 생각은 대부분 즐겁지 않은 것들이다. 주로 걱정, 그리고 아직 벗어나지 못한 과거의 어떠한 것들이다. 나는 생각에 잠기면, 말을 잃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의 기차를 따라가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하늘이 회색으로 변하고 주변의 것들이 색을 잃는다. 미래를 가끔 떠올리기도 한다. 희망보다는 걱정과 우려에 잠긴. 생각을 많이 한다고 나를 둘러쌓고 있는 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미래의 상황을 헤쳐나갈 뚜렷한 혜안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더 깊게 들어갈 뿐이다.



내 동생은 내 기준에서는 꽤 ‘쿨’하다. 내가 동생의 입장이었더라면, 이런저런 걱정이 있었을 듯싶은데(다른 사람의 걱정거리까지 리스트업 해서 머릿속에 정리하는 내가 정말 피곤하다.) 어쩌다 가끔 한 번씩 만나는 동생은 세상 편해 보인다. 그런 동생을 보고 있노라면 서늘한 쿨 향기에 내 속까지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물론, 가족들한테는 이야기하지 않는, 본인 속에만 담아두고 있는 생각은 있을 것이다. 몇 년에 한 번씩 아주 힘들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나 같지는 않다. 생각의 늪에 잠겨 ‘어떡해!’를 외치며 주변 사람을 붙잡고 울상 짓고 있지는 않다. 그런 동생이 신기했던 나는, 수차례 물어보았다. “너는 참 걱정이 없어 보여. 비결이 뭐니.” 나의 물음에 동생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과거의 것들로 인해 복잡할 때는 이렇게 외쳐봐,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나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어.” 대략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었다. 머리로만. 삼십 년이 넘게 길들이고 만들어져 온 내 사고구조가 쉽게 바뀔 수는 없겠지만, 대략 무슨 의미인지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었다.



내 생각의 구 할은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었다. 벗어나지 못한 과거의 기억들에는 늘 누군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사람들로 인해 받은 상처, 고통 그리고 수치심. 나의 생각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그 사람들은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전쟁을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아니, 기억조차 못하고 있을 수도. 나 홀로 생각 속에 빠져 그 사람들을 죽이네, 살리네 하면서 상처 난 곳을 반복적으로 후비고 또 후비고 있었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들의 생각에 매도되었다. 그들의 삶을 나와 분리하지 못한 채 그들이 겪고 있는 또는 겪었던 아픔을 구체화하고 끌어와 내 걱정거리 위에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정작 그 사람들은 그만큼 힘들지 않을 수도 있음에 불구하고! 이런 생각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상처 입은 자가 되었다. 또한 생각은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밖으로 기어 나와 내 몸에 무겁게 매달려 있곤 했다.



그러했기 때문에 동생이 해주는 말이 참 의미 있게 다가왔다. 동생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표현했으나 실상은 ‘타인과 나의 분리’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걱정을 지나치게 하는 것도,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떨쳐내지 못하고 오래오래 곱씹고 있는 것도 모두 그들과 나를 분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조금은 무관심한 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삼십 년 넘게 만들어져 온 내가 한순간에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최소한 노력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력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렇게 또 외쳐보리라. ‘그럴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