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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u Nov 01. 2023

내 고양이의 양육권

주방에 선 채 곰아저씨(남편)와 대판 싸웠다. 오랜만에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손까지 휘저어가며 불을 뿜어댔다. 이에 질세라 곰아저씨 또한 미국인 특유의 어깻짓까지 하며 맞섰다.  마치 웅장한 오케스트라 협연이라도 하는 듯 주거니 받거니 공격과 수비가 오고 갔다. 결혼 십 수년차, 이젠 이런 실랑이가 지긋지긋해지며 순간 모든 게 귀찮아졌다.

‘이런 쪼잔한 새끼랑 더 이상 살기 싫다!’라는 마음이 목까지 차 올랐고, 머리에선 계산기가 마구마구 두들겨졌다. 나의 피와 땀으로 환골탈태한 60살 넘은 그림 같은 집을 팔아버리고 아기자기한 콘도에서 자유부인으로 살아가리라 마음이 막 먹어졌다. 공격과 수비가 오가는 찰나에도 스치는 상상들로 상한 마음이 어느 정도 치유가 되는 듯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내 사랑 얄리의 양육권! 순간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르던 상상들이 차갑게 식었다.


곰아저씨는 재택근무를 한다. 뒷마당이 훤히 보이는 서재에서 뒷마당을 총총거리며 뛰어다니는 얄리를 보며 일을 한다. 그에 반에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병원으로 출근을 하고 해가 떨어질 때쯤 집으로 돌아온다. 낮시간 얄리의 케어는 전적으로 곰아저씨가 맡고 있다. 아침 출근이 바쁜 나를 대신하여 유산균이 듬뿍 얹어진 맛난 냠냠이를 챙겨주고, 모래에서 감자와 맛동산도 캐준다. 비록 얄리의 꾹꾹이와 선택을 전적으로 받는 나이지만, 얄리의 복지에 지대하게 기여하는 사람은 곰아저씨이다. 한마디로 나는 양육권 싸움에서 불리하다는 이야기이다. 얄리의 안전과 평안을 전적으로 고려한다면 말이다. 갑자기 식은땀이 났다. 내가 얄리 엄마인데!!!


다른 간호사 동료들도 고양이를 한 두 마리씩 키우고 있다. 대게가 싱글이어서 그들이 일을 하는 낮 시간에는 고양이들은 홀로 또는 둘이 집안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에 반해 얄리는 집 뒷마당에서 낮 시간을 보낸다. 따뜻하고 온화한 캘리포니아의 날씨 덕에 뒷마당은 사시사철 푸르다. 향긋한 라벤더 트리 위를 윙윙거리는 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텃밭 고수 나무 아래서 낮잠을 늘어지게 자기도 한다. 그런 얄리를 안는 날이면 향긋한 고수 향이 은은하게 나에게로 퍼진다. 얄리가 처음 집에 오고 한동안 집안에서만 지냈다. 하지만 처음 뒷마당에 나와 폴짝이며 너무도 행복해하던 얄리를 본 그날 이후 안전한 집안에서의 생활만을 고집할 수가 없었다. 곰아저씨와 나는 얄리의 ‘welfare’를 위해 우리의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얄리 복지가 때로는 우리의 가슴을 졸이게 했고, 많은 시간을 함께 뒷마당에 나와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하게 했지만 나는 좋았다. 얄리가 행복하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런 얄리의 복지 정책 때문에 나는 아직도 쪼잔한 곰아저씨와 살고 있다. 솔직히 그날 우리가 왜 싸웠는지 나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행인가???




밤이 되면 얄리의 눈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더욱 까맣게 반짝인다. 깡충깡충 책상 위로 올라와 내가 마시던 찻잔에 코를 벌름벌름거릴 때면 내 심장은 초콜릿처럼 녹아 사라져 버린다. 얄리를 품에 안고 손끝으로 전해지는 간질간질 보드라운 털을 느낄 때면 마치 내가 배 아파 낳은 내 애기인 것만 같다. 이러다 진짜 모유라도 나올 지경이다! 얄리가 우리에게 온 뒤로 곰아저씨와 나는 천배, 아니 만 배는 더 행복해졌다. 밤이면 포근한 침대에 셋이 나란히 누워 굿 나이트 키스로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새벽 6시 반이면 어김없이 얄리의 꾹꾹이가 시작된다. 30분 얄리 마사지를 받고 나는 병원으로 출근한다. 환자에 치여 영혼이 탈탈 털릴 오후 쯤이면 달콤한 얄리의 사진이 곰아저씨로부터 전해지고 다시 마음을 추스른다. 하루가 얄리로 시작돼서 얄리로 끝이 난다. 하나님은 세상을 위해 고양이를 만드셨고, 그렇게 얄리는 우리에게로 와 기쁨과 위로, 안식, 탁월한 커플 카운슬러가 되었다. 이제 얄리와 함께 더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 아니, 이미 넘치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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