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7살, 삶을 점검하며 쓰는 글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온 행운은 불행과 다를 바 없다.

by 노아

글을 시작하기 앞서 내가 일해온 순간들을 요약해 봤다.


14살, 광고/마케팅 일 시작

15살, 개발 기획 일도 시작, 기업들과 본격적으로 협업

16살, 기업, 개인 대상으로 강의 시작

19살, 본격적인 paper 커리어 시작

20살, 두 개 브랜드 창업 - 한 개는 잘 되었고, 소형 엑싯

23살, IT 서비스 창업 - 많이 잘되었고, 재직 중인 회사에 양도


천재 소리 들으면서 13년 이상 같은 일을 해왔고 인정도 많이 받고 돈도 내 기준 참 많이 벌었다. 그러나 지금은 천재가 아닌 운이 미친 듯이 동작했던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그렇기에 과거를 팔아먹고살고 있다.

(*물론 수없이 노력도 정말 많이 했다...)


불완전하고 변화가 간절한 사람이다. 변화에 시작은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이다.


내려놓는 게 참 어렵기에 스스로를 내려놓고 인정하기 위해 잠시 최근 2년간 세월을 글로 기록해보려 한다.



내 삶에 큰 결정은 대부분 미칠 듯 뛰는 가슴을 이유로 결정했다.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요소로 인한 결정도 일부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가슴이 뛰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26살에 찾아온 일


26살 여름, 나는 모든 마음과 시간 그리고 에너지를 쏟았던 여정을 스스로 멈췄다. 내 20대 상당 부분을 투자했고, 내게 다가온 엄청 난 행운들을 들이밀었던 그런 여정에서 하차했다.


생각보다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그 긴 여정을 멈추는데 고작 며칠 밖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본질은 내가 정체되어 지쳐있었고, 가슴 뛰는 순간이 점점 적어지던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표면적인 이유 밖에 되지 못했다.


앞으로도 가슴 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 그 긴 여정을 멈췄다.


여정을 내려놓은 마지막 날 찍은 사진


가슴이 더 이상 뛰기 힘들 것 같은 시간들에 내 젊음, 시간, 돈을 등가교환 하고 싶지 않았다.


가슴 뛰지 않는 일을 한다는 건 영혼이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정답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자유가 떠오른다. 그가 보는 자유는 이렇다.


행위의 시작이 행위자 스스로에게 있을 때 온전한 자유가 있다.


어떠한 환경이나 관계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는 게 아닌, 내가 온전히 원하는 것들을 나 스스로 행하고 행할 수 있는 그런 연속된 것들을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유는 가슴 뛰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혹은 가슴 뛰는 순간들이 내게 자유를 쥐어주기도 한다.

물론, 이 자유를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내 삶 상당 부분을 대가로 지불하는 무책임한 한량 같은 삶으로 미화하고 싶진 않다.


예로 나는 예술적 감성을 가진 일부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것을 내가 믿는 자유와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새로운 여정 시작


그럼 나는 그 긴 여정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잘 살았는가?" 하면,


그렇지 못했다.


가슴이 뛰지 못할 것 같은 미래를 보고 멈췄지만, 새롭게 발걸음을 옮겼던 발자취 방향은 가슴 뛰는 자유가 아닌 오로지 논리와 이성을 통해 결정된 방향이었다.


그렇게 출발하다 보니, 금방 지쳤고 길도 잃어버렸다.


새로운 여정과 동시에 내게 엄청나게 큰 행운들이 찾아왔지만, 준비되지 않은 내게 그 행운들은 잠깐만 스쳐갈 뿐 온전히 있어주지 못했다.

당시 연남동 사무실에서 찍은 야경

잠깐에 행운은 내게 자유라는 착각을 안겨주고 이내 금방 사라졌다.


그렇게, 찰나에 행운이 떠나고 불행이 찾아왔다. 버티기 힘들었다. 슬럼프와 번아웃을 경험해보지 못한 내가 이러한 것들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회피했고, 작아져 움츠러들며 지하 밑바닥까지 내팽개쳐졌다.


평소에 나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순간들이었지만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렇게 내 밑바닥을 여실히 드러내며 26살이 지났다. 새 여정을 시작한 지 고작 반년만이었다.




27살이 된 1월, 회피


27살이 된 새해 나는 오로지 회피를 이유로 무작정 출국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항공권 없이 언제 돌아올지 정해두지 않고 일단 지구 반대편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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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고, 벗어나고 싶었다. 회피라는 행위를 정말 혐오스러워했는데 내가 회피하려 떠났다.


오로지 회피를 이유로 떠난 여행은 즐거울 리 없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참기 힘들 정도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대단한 무언가를 찾거나 해결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안고 출국했지만, 어떠한 준비도 없이 나간 회피성 여행은 당연히 내게 어떠한 깨달음도 줄 수 없었다.


그렇게 여행을 중단하며, 다시 돌아와 지금까지 어질러진 모든 것들을 정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얻은 게 있다면, 회피는 답이 아니란 것 정도를 뼈저리게 느꼈다.





27살 봄, 하나 둘 정리하기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어질러진 모든 것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자존심도 상하고, 비참하면서 막막했던 순간들이었다.


내 상황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수습하는 과정이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 없었다.


하나하나 정리했다. 인정하고, 정리하고, 내려놓고, 인정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받았던 불행이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줬다.

계속 주워 담으며 정리했다.


처음엔 답도 희망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러한 순간들을 거치니 조금씩 정말 아주 작은 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길이 동아줄 같았고, 그렇게 살기 위해 강제로 내 상황을 동기부여 땔감으로 사용했다.


스스로 세뇌하고, 계속 되뇌었다.


봄이 오면서 나는 내가 보았던 아주 작은 길들을 다시 넓히고, 다져갔다. 정리하고 주워 담은 그 길이 이제는 다져지고 넓어져갔다.




거짓말 같이 봄이 지나면서, 내 상황은 빠른 속도로 좋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고, 이해해 줬다. 그렇게 내가 스스로 자초한 불행했던 순간들이 청산되어 갔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니 이제는 그냥 이대로만 지내면 남들 부럽지 않을 정도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게 좋아졌다. 상황이 정말 많이 좋아졌고, 내가 노력한 것보다 큰 보상이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안전장치를 목적으로 심히 망가졌던 내 스스로가 아직 온전히 자립할 수 없을 것 같다 생각해, 나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었다.


그렇게 내게 '평탄함'이 찾아왔다.


불과 겨울까지만 해도 지옥 같았던 순간들이, 이제는 즐거운 순간들로 덮여갔다.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작은 성취들이 나를 빠르게 치유했고, 결국 어떻게든 책임을 마무리해 갔던 순간들이 내 자존감을 다시 지탱해 주기 시작했다.

KakaoTalk_20260120_010956137_01.jpg 아프리카 케냐 여행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찾아온 행운


가을이 되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남 부럽지 않은 수준까지 매우 빠르게 안정화되었다. 일은 덜하는데, 수입은 계속 늘었다. 매달 매우 빠른 속도로 수입이 늘었고, 일도 잘됐다.


왜 이렇게까지 잘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노력한 거 이상으로 곱절로 잘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생각이 점점 머릿속을 지배해 갔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일하는지 헷갈렸다. 가슴이 뛰지 않았다. 당시 느끼는 즐거움들은 그냥 돈 좀 잘 벌게 되는 그런 순간을 다시 만끽하며 오는 안정감과 평온함, 약간의 자신감 정도였다.


가짜 자유였고, 가짜 즐거움이었다.

직장인 연봉에 가까운 돈들이 매달 통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도, 행복하지 않았다.

내게 돈은 중요한 가치가 아니란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이때 나는 가슴 뛰지 않는 나를 다시 되돌이켜 보고, 회고했어야만 했다.


당시 나는 그저 공허함만 느끼게 되었다. 회고는커녕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쓸데없는 시간들만 보내기 바빴다. 어쩌면 준비되지 않은 내게 과분한 행운과 보상이 너무 빨리 찾아왔던 것 아닐까 싶다.


이때까지는 그저 알 수 없는 공허함만 느끼며, 기계처럼 일했다. 그리고 다시 조금씩 26살에 내 모습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슴 뛰지 않던 일들, 목표를 정하지 않는 것들, 성취하려 하지 않는 것들 내가 혐오하던 내 바닥 같은 모습들이 조금씩 노출됐다.




공허한 순간들에 연속, 공허함의 깊이가 깊어져갔음에도 소득과 수입은 늘어만 갔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온 행운은 불운이라는 걸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공허한 겨울을 보냈다.




불행을 '잘' 보낼 수 있는 체력 만들기


28살이 되었다. 슬슬 공허함을 자각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26살에 나보다는 빨리 알아차렸다.

아주 작은 변화들을 하나, 둘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내 지금 상태가 지속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6살에 내가 그랬으니까.

물론, 26살에 나보다 지금은 배운 것도, 깨달은 것도, 단련된 것도 많지만 아직 불완전한 사람이란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지금 내게 찾아온 찰나에 행운들이 떠나고 다시 불행이 오더라도 담담하게 이겨낼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본 결과 가슴 뛰는 일이 필요해졌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 삶을 가슴 뛰게만 하면 된다.


작은 목표를 만들고, 성취하는 과정에서 치유받으면 된다. 그리고 그 목표에 가까워지는 나 자신을 상상하는 게 가장 가슴 뛰는 순간 아닐까 싶다.


지금에 나는 너무 안정적이고, 안락하고, 게으르게 지내고 있다. 이 순간들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경험을 했다.


뭔가 새로운 걸 한 게 아니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 내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다시 보게 되면서, 가슴 뛰는 순간이 생겼다.


일단, 자유로워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

이게 내가 가슴 뛰는 첫 번째 목표가 되어줄 것 같다.



글을 마치며, 떠오른 시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시가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