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자와 인플레이션

부동산이 인플레이션 헷지(hedge)라는 허상

by 끄적이기

최근 마포구의 한 아파트를 '생애 최초' 매수하게 되면서 그간 고민했었던 것들을 생각나는대로 한두가지 풀어보고자 한다. 투자론에서는 부동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Property is an inflation hedge (부동산은 인플레이션 헷지 수단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실물자산인 부동산은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을 흡수하여 적어도 물가상승률 만큼은 가치가 상승한다는 뜻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요즘 같이 물가가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에 저축하기 보다 실물자산에 투자하여 최소한 물가상승률 정도는 방어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재무학, 투자론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요새 저축은행이나 신협 특판상품을 보면 정기예적금 이율이 3~4% 정도는 되는데 이보다 확실한 인플레이션 헷지가 있을까? (예금보호한도도 최근 1억으로 올랐다) 부동산 불패신화, 강남공화국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물가상승률 정도 방어하고자 전 국민이 부동산 전문가가 된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부동산'은 역사적으로 주요한 자산증식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저조한 출생률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 과밀화된 인구 집중 현상과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 관치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금융 시스템에 더불어, 화룡점정으로 이문에 밝고 남들과의 비교에 혈안이 된 특유의 민족성이 더해져 '부동산 불패신화'가 만들어 진 것 아닐까. '23년말 기준 우리나라 주택 시총은 6,839조원 수준으로 한국 부동산 시장은 이제 정부에서도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는 공룡이 되어 가고 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부동산은 인플레이션 헷지 수단이 아니다. 적절한 운과 노력이 결합되는 것을 전제로, 대한민국의 부동산은 인플레이션을 넘어선 alpha(초과수익)을 제공하는 부의 증식 수단으로 인식된다. 이에, 무주택자들도 종부세와 부동산 정책에 민감한 듯 보이며 부동산 대출 규제로 몇 달 동안 나라가 떠들썩 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자란 MZ들이(나도 아직 MZ다) 그 동안 미국 주식과 암호화폐 투자로 축적한 부를 부동산에 쏟아 붓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부동산 폭락론자였던 필자가 최근 깨달은 교훈은 '평균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경기는 당분간 악화일로일 것이고, 불경기면 실물경기도 나쁠 것이고 고로 대한민국 평균 부동산 가격은 하락할 것이다. 꽤나 설득력 있는 논증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기불황이 지역별 양극화와 신축 선호('얼죽신')로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별 입지와 상품 차별화가 더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너도나도 올랐던 유동성 장이 끝나고 옥석가리기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쩌다보니 대한민국 부동산 정글에 한 발 내딛은 꼴이 되었다. 우리 가족이 모아온 유동성 대부분이 투자된 탓에 매일매일 KB부동산 실거래가 창을 확인한다. 물리면 존버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예리한 조언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마냥 해맑게 즐거운 우리 아내와 아들을 보면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거지' 간담이 서늘해진다. 어떤 유튜버가 그랬던가, 부자가 되는 지름길은 실행이라고. 투자의 책임은 오롯이 자기 자신이 지는 것이라는 투자상품의 관용 문구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All investments involve risk, and investors should conduct their own due diligence.

(모든 투자는 리스크를 동반하며 투자자는 스스로 실사를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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