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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 파 Aug 31. 2022

잘 모르겠어요

모든 것에 대한 이해 #5

때는 초등학교 2학년(2006).


선생님께서 어떤 것에 대해 물으셨다.

조금 고민하다가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선생님께서 '잘' 모르는 거면, 아는 데까지 말해보라 하셨다.

또 조금 고민하다가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선생님께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왜 '잘' 모르겠다고 답했냐"라고 물으셨다.

조금 고민하다가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xxx


나의 말과 행동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 게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른들은 자꾸만 물었다. 왜 그랬냐고.


처음에는 그들을 만족시키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서 말했지만

내 어린 입으로 하는 설명은, 어떤 설명이더라도 부족했다.

거의 모든 설명에 꼬투리를 잡혔고

가면 갈수록 내 대답은, 몰라 or 그냥, 둘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

내가 봐도 나의 설명이, 이전에 했던 나의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어른들에게, 또 나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다만 생각하는 것에는 시간이 걸리는데 자꾸만 와서 왜 그랬냐고 물으니, 귀찮아서 일단 보낸 거다.


물론 저렇게 대답하면 무성의한 대답이라며 혼을 낸다.

적당히 혼이 나는 표정으로 그들의 말을 듣고 나면

적당히 교육했다고 생각했는지, 스스로의 교육에 만족하며 물러난다.


그렇게 그들을 보내고 나서

다시 그 상황에 마주치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한 번 생각해본다.

어떤 말과 행동이 '설명하기 편할지(합리적인지)' 생각해본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설명하는 게 어렵다고 느낀 나는, 거꾸로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은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저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대답은 몰라 or 그냥으로.

보통은 그들의 합리 안에 있었지만

아닌 것 같다 싶으면, 시험하고 싶은 게 있으면

때때로 그들의 합리 밖으로 나오기도 하면서

그들의 합리가 무엇인지 계속 보려고 했다.


xxx


 글만 읽으면 내가 어른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나한테는 혼이 날 때 두 가지 모드가 있었다. 하나는 진지하게 듣는 모드, 다른 하나는 귀찮으니 빨리 끝내게 하는 모드. 전자는 내가 그의 말을 듣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그렇게 했고 후자는 반대이다. 모르는 것을 말해 줄 때는 집중해서 들었고, 아는 것을 계속 말할 때는 그냥 빨리 끝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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