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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 파 Aug 22. 2022

타인, 시험

모든 것에 대한 이해 #4

 사람은 나와 남으로 구분되고, 남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모르는 사람의 영역에서 아는 사람의 영역으로 넘어온, 나의 첫 타인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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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니 뭐니 해도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시험이다. 1학년(2005) 때 봤던 받아쓰기가 내 첫 시험이었다. 초등학교를 혼자 입학했으므로 시험 또한 혼자 봤다(깡촌이었다). 첫 시험부터 그런 환경이어서 그랬을까. 나에게 시험은, 경쟁이 아니었다. 나에게 시험의 성패 여부는 '남보다 잘 봤는가 못 봤는가' 혹은 '1등을 했는가 못했는가'로 결정되지 않았다. 남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시험 점수가 '100점'이면 성공, 그렇지 않으면 실패라고 생각했다. 내가 말하는 '100점'은, 출제자(선생님)를 만족시켰다는 것(선생님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에게 시험은 선생님을 만족시키느냐 못하느냐의 게임이었다.


 그러니까 시험은 남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나에 의해서 결정되는 거였다. 시험에서 성공하려면, 100점을 맞으려면, 선생님을 만족시키려면 당연히 나에게, 또 동시에 그에게 집중해야 했다. 하나도 안 틀리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니까.


 100점을 맞으면 선생님이 만족했으므로 나도 만족했다.

 시험에서 실패했을 때는 틀린 문제들을 봤다. 다음에 100점을 맞으려면 그래야 했으니까.

 100점을 맞기 위해 노력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만족했다. 그를 보고, 나도 만족했다.


 그러는 한편 사실 나는, 100점을 맞은 것과 100점을 맞지 못한 것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100점을 못 맞으면 좀 아쉽긴 했지만, 틀린 문제들을 공부하고 시험을 다시 보면 다음에는 맞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제는 100점 아닌가? 다음에 100점 맞을 수 있게 되면 된 거잖아?'라고 생각했다. 성공이나 실패나, 그게 그거 아닌가? 결정적으로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난 그를 만족시켰고 우리는 여전히 재밌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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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만 말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걸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가 본 시험은 10 문장을 받아쓰는 시험이었고, 틀리면 틀린 문장을 10번 써오는 재앙에 가까운 숙제가 생긴다. 어렸을 때부터 약았던 나는, 치팅을 하기 시작한다.


 시험을 보기 전에 시험 볼 10 문장을 알려줬었다. 그 문장들을 집에서 연습할 때 공책에 꾹꾹 눌러썼다. 다음 페이지에 흔적이 남도록. 흔적이 남아 있으니 틀리지 않았고 숙제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자유시간이 늘어났고 남을 속이는 건 스릴 있었다.


 하지만 이내 선생님께서 아신 것 같다. 더 이상 치팅을 할 수 없는 구도로 시험을 보게 하셨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혼내기는커녕 아예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속이려고 했던 것에 대해.

 그 후로 다시는 치팅을 하지 않았다. 글씨 쓰는 연습 한다 치고 틀린 문장을 썼다(글씨를 못쓴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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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인간관계는 '타인을 만족시키느냐 못하느냐'였다. 시험처럼.

 운이 좋아 다 맞혀서 바로 타인을 만족시켜도 좋고, 틀리더라도 다시 공부해서 다 맞히면 된다. 그리고 그 둘에 큰 차이는 없으니 속이려 하지 마라. 나보다 강한 사람은 속일 수 없고 나보다 약한 사람은 속일 필요가 없다. 속이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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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남을 만족시키기 위해 남에게 막 휘둘리라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나의 만족을 위해 남을 만족시키는 것이므로.

 '나와 남'에 대한 개념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문장들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미리 조금만 말하면, '모든 개념은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고 그 필요에 맞춰서 사용해야 된다.' 오남용 하지 말라는 말이다.


여튼! 서로에게 만족하고 만족시키는 시간을 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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