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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 파 Aug 17. 2022

이해를 할 수가 없네

모든 것에 대한 이해 #1

어떤 이는 사기를 쳐서 남의 돈을 훔치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돈을 선뜻 남에게 내어 준다.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을 죽여 그의 모든 것을 빼앗지만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모든 걸 걸고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의아하다.


xxx


 내 생각의 시작은 이해를 하기 위함이었다.


 종종 서로에게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그런 말을 속으로 생각한 적도 있고 내뱉은 적도 많다. 하지만 그렇게 타인에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마다 점점 불편해져서 언제부터인가 입을 다물고, 내가 왜 이 표현을 꺼리고 있는지 고민하게 됐다.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건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테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고민 끝에 내가 찾은 이유는 그 말은 ‘이해(관계) 포기 선언’이라는 것.

실제로 이해를 할 수가 없다기 보다도, 앞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겠다는 선언.

이해를 위해 노력하지 않겠다는, 그런 선언.


 마치 수학 문제를 풀 때 많은 시간을 쏟았지만, 미처 풀지 못하고 넘기는 그런 상황에서 드는 찝찝한 마음 때문에, 괜히 문제에다가 욕하고 다시 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행동하는 건, 그 순간에 받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현명한 판단은 아닐 거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같은 문제를 다시 마주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또 화내고 욕하고를 반복할 것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 당신이 화내고 욕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쉬울 거다. 그렇게 이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한 명씩 한 명씩 세계가 쪼그라 들어서 결국 세상에 혼자 남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사람을 이해하기로 했다.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세상도 이해할 수 있을 거고,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나는 드디어 자유롭게 된다.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올해로 만 24살, 이제야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이해를 했다고 말할 수 있기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내가 한 방법대로 말해보려 한다. 우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이해를 하려고 했다.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이해. 나는 내가 어릴 때부터의 기억을 되짚어보면서 왜 이 일이 기억에 남았는가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는 걸로 시작했다.


xxx


삶의 마지막 순간에

삶에 대하여 생각할 때

가장 큰 기쁨도

가장 큰 슬픔도

가장 큰 행운도

가장 큰 불행도

가장 큰 축복도

가장 큰 저주도

모두 사람일 거다.


모든 것이 사람인 사람의 삶.

인생.


xxx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

당신에게 이해받고 싶다.


내 세계에 당신이 있길 바란다.

당신의 세계에 내가 있길 바란다.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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