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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feel co Mar 04. 2022

가정부를 들였다.

- 나 같은 무수리에게 가정부라니!

내 살림을 대신해줄 사람을 고용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설거지 해주고, 옷을 벗어 두면 빨래를 척척해주고, 청소부터 정리까지 모든 것을 다해줄 그 사람!

한국보다 비교도 안되게 저렴한 인건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도네시아는(다른 나라 사정은 모르겠다.) 아직 가정부 문화가 있어서, 집마다 가정부 방. 화장실이 다 구비되어 있다. 규모가 큰 집이라면 가정부방이 두 개 있기도 하고 가정부 부엌도 따로 있다. 




나에게 맞는 가정부를 찾을 수 있긴 있는 걸까?

지금의 가정부를 만나기까지 다섯 명의 가정부가 바람을 맞혔다. 제발 나를 써달라고 하다가 갑자기 동생들을 더 돌봐야 해서 못 오겠다는 사람, 분명 온다고 했는데 당일 연락 두절된 사람, PCR테스트하고 우리 집에 오기로 한날 아파트 입구에서 열이 38도여서 출입이 불가해서 돌려보냈던 가정부등 지금의 가정부가 들어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크게 특별한 일이 아녔기에, (한국이었으면 맘 카페에 수도 없이 올라갔을 일들인데!) 빨리 잊고 다른 사람을 찾아보았다. 인도네시아어가 능숙하지 않으니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소통해야 했기에 시간, 노력, 에너지가 배로 들었다.



도저히 수소문해서 가정부 찾기는 어려워! 에이전시를 통해 식모 구하기.

소개로 가정부를 대부분 구한다. 왜냐하면 소개로 얻으면 그 사람에 대해 어떤지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언어도 안되고 이곳에 온 지 이제 몇 개월밖에 안된, 주재원 와이프 경력으로 따지면 인턴밖에 되지 않았기에 인도네시아 현지 에이전시를 통해 가정부를 구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에는 정말 많은 가정부&내니 YAYASAN(협회) 이 있다. 이곳에 수수료를 약 20만 원 정도 내면 왓츠앱으로 여러 가정부의 프로필을 보내준다. 또는 사이트에 가면 여러 가정부들의 프로필을 보고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세명의 가정부 후보

내 배우자를 점지하듯 나는 정말 세심하게 살피고 또 살폈다. 그 사람의 인상과 또 그녀가 잘할 수 있는 부분까지 프로필을 읽고 또 읽었다. 내가 24시간 함께 할 사람이기에 내가 그 사람을 편하게 잘 대할 수 있을까 '느낌'을 많이 살폈던 거 같다. 객관적인 정보와 사진을 아무리 보아도 사람을 겪어보기 전까지는 다 알 수 없기에 나의 '느낌'을 믿고 '운'이 따르길 바랬다. 다들 20대 초반은 너무 어려서 집안일을 잘 모른다 하고, 40대 이상의 가정부는 경력이 있을 거라 일을 더 잘할 것이라고 주재원 선배들의 조언을 따라 나는 Semi라는 사람을 우리 집 가정부로 선택했다.


우리 집 식모 Semi 

우리 집에 온 가정부는 나이는 40이 다 되었다. 이곳에서 나이 40이면 손주를 봤을 수도 있는 나이이다. 스무 살 이전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영어가 가능한 가정부도 있지만, Semi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고 오직 바하사만 가능했다. 이것저것 말해주고 알려줄 것이 많은데 그때마다 구글 번역기를 한국-> 영어-> 인도네시아어 ( 한국어를 바로 인도네시아로 번역하는 것보다, 한국-> 영어로 번역하고 영어를 인도네시아 아어로 해야지 번역 오류가 적다)로 소통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그렇지만 아쉬운 데로 번역기를 통해 그녀와 나는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소통할 수 있었다. (번역기 만세!)


핸드폰은 2G를 사용하고, 엘리베이터는 타본 경험이 없는 Semi. 전자레인지 사용법부터 알려줘야 했다.

코로나 때문에 가정부가 아파트에 들어오면 밖으로 외출이 어려웠다.  그래서 왓츠앱이나 토코 페디아 등을 통해 가정부들이 식재료를 주문하는데 대략 난감한 상황 발생했다. 그녀의 핸드폰이 스마트폰이 아닌 90년대 3G 핸드폰이었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작은 핸드폰에다가 배터리도 박스테이프로 붙여둔 핸드폰이었다.

하.. 이 상황을 어떻게 하지...

그리고 이뿐만이 아니었다. 가정부가 엘리베이터를 매우 무서워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갈 때 매우 놀라고, 버튼을 누르고 하는 모든 것을 생경하게 여겼다. 2021년을 살아가는 나는 '당연히 알겠지' '당연히 가지고 있겠지' 싶었던 것들 그녀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아파트인데도 길을 잃어버릴까 무서워서 나갈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가정부를 보며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도 전자레인지 사용법, 청소기 코드에 꼽는 법, 세탁기 이용법 등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내 입장에서는 '요즘 같은 시대'에? 라며 의아한 상황들을 직면했다.


내 집에 내 식구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 나에겐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가정부가 거실에 나오면 내 집인데 나는 방에 머물고 있고, 가정부가 청소를 시작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을 본다. 내 집인데 내가 불편하다. 정말 내 천성은 무수리인가? 싶을 정도이다. 그래도 타지 생활하면서 가족도 없는데, 이렇게 가사의 도움을 누군가에게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식탁에서 밥을 먹고, 그냥 일어나는 것조차 이래도 되나 싶다.

가정부와 함께해본 적이 없는 나.

분명 적응하면 나는 한국 가서 가정부를 그리워할 것이 뻔하다.

가정부를 찾았으니 이제 정말 본격적인 '뇨냐' 라이프를 즐겨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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