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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lah Dec 27. 2016

[15] 늘 그래 왔던 습관

[15] My Old Habit



지난 8월, 내가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2주 뒤, 엄마가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여기서 두 달 정도 있다가 다시 들어가려고 했던 엄마의 계획은 어깨 부상으로 인해 무산됐다. 다행스러운 건, 다친 어깨가 속도감 있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과 어깨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하기에 2개월을 한국에 더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겨울방학 겸 1년 반 만에 한국을 방문한 동생의 2주간의 일정 뒤, 2016년 성탄절, 엄마는 동생과 함께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불과 이틀 전 이야기이다. 


오늘 운동을 다녀온 후 빨래를 돌리기로 했다. 내 흑백 패턴으로 짜여 있는 빨래통에 어느새 형형색색의 옷들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세제를 눈금에 맞춰 넣고 세탁기 문을 닫았다. 시작 버튼을 누르니 빨래는 시작되었고 난 허리를 폈다. 배가 고파오고 있음을 느꼈다. 오랜만에 운동을 나름 열심히 해서 그런가, 운동 전에 요기를 간단히 해결해 준 통통한 사과가 그새 소화가 되었나 보다. 오늘이 지나면 위험해질 샐러드 통을 꺼내서 그릇에 붓고 소스로 덧입혔다.


포크를 집으며 카톡을 켜 엄마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밥을 먹으려 하면 엄마가 생각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 할머니와 고모와 함께 여섯 식구가 살았을 때에도 그랬고 네 식구가 살았을 적에도, 미국 이민을 가서 세 식구였을 때에도 둘러앉은 식탁은 늘 소란스러웠다. 서로 더 많이 먹으라며 많이 먹는 것이 건강해지는 길인 줄로만 알았던 지난 날들. 나에겐 없는, 엄마의 이야기를 재밌게 전달하는 능력 덕분에 웃음과 슬픔, 분노와 애통 등의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식탁 위의 공기를 시끄럽게 했던 그 시간들. 그리고 맛이 있든 없든 (엄마와의 입맛이 다른걸 어느 누구를 탓할 것인가) 집밥은 늘 옳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엄마의 따듯한 밥. 그래서 누군가와 또는 혼자 밥을 먹는 시간엔 그 누구보다도 엄마가 생각나는 것은 필연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시간 내가 밥을 먹을 때 엄마는 무엇을 하고 있을는지, 지금 시간이면 그곳에선 저녁식사를 하고 티비를 보고 있을는지.


비단 식사 때만이 아니다. 조용한 방이든, 시끌벅적한 거리든 상관없다. 혼자 길을 걸을 때, 별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 때, 주변을 둘러보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내가 보고 있거나 경험하고 있는 어떠한 것을 나눌 상대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나는 줄곳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열에 아홉은 엄마와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을 때까지 통화를 했다. 


나는 늘 그래 왔다.


신호가 가고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중간에 몇 차례 불안정한 네트워크로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걸곤 했지만 무려 80분의 시간 동안 보이스톡을 했다. 오래간만에 10분 이상의 통화다. 오늘은 내가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엄마와의 장시간의 통화를 허락한 셈이다.


늘 그래 왔다. 


미래의 어느 날, 비행기 안에서도 통화가 가능해진다면, 태평양을 지나가고 있을 엄마는 고요한 잠을 가지다가도 핸드폰 소리에 깨어나 내 전화를 받을 것이다. 불과 몇 분 전에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속닥속닥 나눴던 사람들처럼,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 보다 가장 친근하게,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을 테니까.



글, 사진 Se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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