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의 습작
6월의 토요일.
흰 페인팅으로 도배된 큼직한 공간에서 흰 둥근 테이블 앞에 앉아 랩탑을 켠다. 랩탑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아 유튜브 사이트를 연다. 기타와 드럼으로 노래가 시작되고 멜로디를 파도 타듯 자연스레 이야기가 시작된다. 밖은 3-4층 높이의 푸른 나무들이 주택을 두르며 견고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랩탑 스크린에 눈을 두는 시간보다 창밖의 짙게 물든 녹색 배경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그사이 틈을 두고 두어 사람씩 짝을 지어 계단을 올라 이 공간으로 들어온다. 이 장소가 처음이거나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임이 틀림없을 정도로 계단을 오르다가도 높게 걸려있는 이 공간의 이름을 발견하다가 잠깐 멈춰서 핸드폰을 꺼내 든다. 사진을 찍고 주위를 둘러본 다음 천천히 걸어 올라와 문을 연다. 그들은 들어와서 나와 그대가 앉아있는 왼쪽 모퉁이부터, 잔잔한 소리들이 오고 가는 오른쪽 코너를 쭈욱 훑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공간을 파악하고 있다. 공간의 색과 넓이를 대략 확인을 한 후엔, 조금씩 코를 자극하기 시작하는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빵들이 나열되어 있는 곳으로 그 냄새에 이끌려 걸어갈 것이다. 그리곤 그중 몇 개를 골라 집어 트레이에 올린 뒤 카운터로 가서 커피와 함께 계산할 텐데, 사실상 냄새를 따라 빵을 집고 카운터에서 커피를 주문한 건, 내가 미리 시범을 보인 것일 뿐, 꼭 그러지 않을 수도 당연 있다.
누군가 널찍한 카페가 좋은가, 아니면 테이블이 서너 개만 있는 카페가 좋은가 라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선뜻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널찍널찍 한 곳에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그와 동시에 소리들이 매섭게 뒤섞여 그대와의 대화를 하는 것에 목소리 성량이 작은 나로 하여금 당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힘들게 된다면 그곳은 내가 또 한 번 갈만한 곳은 아닌 것이다. 공간이 꽤 협소해서 카운터에 있는 사람과의 거리가 무척이나 가깝다면 그곳 또한 이 예민한 성격으로는 다시 갈 수 있는 공간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대나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조용조용하게 커피 너머로 대화를 나누겠다면 그것은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공간의 크기보다는 커피 자체가 나에겐 더 중요하다. 그 자체의 authentic 한 맛을 가진 커피는 큰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편안하면서도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게 약간의 긴장감을 주는, 하지만 오래 머물러 있어도 부담되지 않을 분위기도 못지않게 고려가 되는 사항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 대학원 원서만 준비하는 약 7개월 간의 시간이 있었는데 이 시기에 난 원서를 넣기 위해서 어떻게든 글을 써야만 했다. 그때 당시 난 카페라는 공간에서 하루 중 일부의 시간을 거의 매일 보내다시피 했었고, 글이 잘 써지는 카페를 찾고 싶은 심정과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내 욕망으로 인해 거의 매일 노트와 펜, 랩탑을 넣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지금은 예전처럼 부지런하지 못한 것인지, 일하고 돌아오면 이 노곤해진 몸을 끌고 나가는 것이 힘든 것인지, 아니면 커피 한 잔의 가격이 꽤 올라 부담을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엔 집에서 마시는 커피도 맛이 있고 커피를 마시며 나의 사적인 공간에서 글을 쓰는 것이 나쁘지 않다. 집중도 꽤나 잘 되어서 요즘엔 일주일에 한두 번 카페를 갈까 말까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엔, 세네 시간을 부담 없이 작업을 하며 보낼 수 있었던 공간들이 있었고, 반면 어느 공간에서는 어느 이유였던 건 간에 한 시간도 채 되지 못해 아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곳들도 있었다. 카페에서 머물던 7개월 정도의 시간 전후에도 '커피'와 '카페'는 '글'이라는 영역이 넓게 차지하고 있는 내 삶에 있어서 특별한 관계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카페의 공간 안에서 어떻게든 글을 쓰려고 애썼던 그 시절, 대학원에 가서 '시'를 더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어 자작시로 포트폴리오를 만들던 그때, 내 안의 간절함이 전통을 하나 낳았었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나에게 영감이 필요했고, 그 영감이라는 것은 한계적인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내 안에 거하는 당신을 우선적으로 구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내 삶의 목적을 찾게 된 것도 당신 덕분이라는 믿음으로 인해, 글을 쓰기 전 난 당신을 찾았다. 이 시간에 감사하다고,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질문을 당신께 적어 보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이 관습을 행하고 있고 형식적으로 보일 순 있지만 이 행위는 나로 하여금 바쁜 가운데 쓰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의 햇살이 큰 창을 통해 살랑거리며 들어오고 있고 어느새 주변 테이블엔 사람들이 앉아 빵을 뜯어 나누고 있다. 난 저절로 재생이 되는 유튜브의 시스템으로 인해 내가 알지 못하는 노래를 듣고 있고 악기들의 소리가 줄어들면서 보이스가 드러나는 클라이맥스 직전의 순간에 도다른다. 에어컨 바람으로 약간은 쌀쌀함이 느껴지는 바람이 내 카디건의 끝자락을 조금씩 흔든다. 그대야, 난 지금 당신이 필요하다. 당신을 더 원한다. 이 시간 이 장소에 있음이 감사며 내 마음이 기쁘다 한다. 지금 난 제한적인 공간과 범위를 뛰어넘는 당신의 영감이 필요하다. 그것을 기다리는 동시에, 받아 경험하는, 내가 지금까지 당신과 함께 누려왔던 것을 오늘도 누리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