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어 펜을 들다
나는 글 쓸 준비가 완료되었다면 거침없이 써내려 간다. 설계도를 머릿속에 그린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책을 집필하는 기간이 매우 힘겨웠다. 이렇게 펜이 무겁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처음 쓰는 글이기 때문일까. 심리학 관련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상실의 고통 중 가장 큰 것은 배우자와의 사별이라고 한다. 한참을 되뇌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펜을 놓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상처가 흉터가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듯 아직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을 쓰는 것은 나와 같이 사랑하는 가족을 하늘로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을 누구나 겪기 때문이다. 우리 생을 놓고 보면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그런 큰일을 그르치면 남은 사람들의 삶이 너무 힘겨워진다. 16년간 사별, 이혼, 가정불화 등의 심리 상담을 전문적으로 해 오신 선생님께서 나와 같은 사례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 상담해 봤지만 이렇게 가족의 마지막을 잘 준비한 사례는 보지 못했다는 말씀이셨다. 선생님은 기회가 된다면 책으로 남겨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보길 권하셨다.
마지막을 준비하며
아내가 하늘로 떠나기까지 우리 가족은 나름의 준비를 했다. 당사자인 아내를 위해 아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대화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고, 병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행동에 옮겼다. 아내의 투병생활은 아이엄마의 공백으로 이어져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아이들을 위한 치유 노력도 소홀하지 않았다. 나또한 아내의 투병생활을 간호하며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후회 없는 하루하루를 살도록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지나간 시간에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만약 아내가 하늘로 떠난다면 그 후 평생 살아있는 아내를 볼 날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뒤에서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지금 내가 할일은 아내가 살아있는 이 순간이 내 생에 최고의 날임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의 죽음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누구나 한번 죽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어차피 한번 맞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이 짧게나마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좀 더 그 시간을 현명하게 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삶은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과 절대 멀지 않다. 나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나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생각 또한 맞지 않다. 그것은 그저 통계상 수치일 뿐이다. 오늘 벗어 놓은 신발을 내일 신을 수 있을지 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절대 먼 남의 일이 아니며 내일이 아닌 오늘의 일이다.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을 집필하는데 많은 영감을 준 사랑하는 딸 보윤이, 아들 건우에게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담아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먼저 긴 여행을 떠난 아내 최진희에게 깊은 고마움과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2019.11. 10
일요일 오후 한글공원 벤치에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