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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배터리 잔량에 약한 사람이다.
휴대폰도, 태블릿도, 손목에 찬 시계도. 숫자가 20, 10, 5로 내려갈수록 마음이 먼저 내려앉는다.
잠깐 앉은 카페에서도 빈자리보다 먼저 콘센트를 찾는다. 마치 내 숨구멍이라도 되는 것처럼.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충전’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을 살았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초조하지 않았을까.
그 시절엔 불안해할 잔량도, 숫자도, 빨간색 경고도 없었을 텐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불안은 애매한 상태에서 자라는 것 같다.
아직 남아 있지만, 그만큼은 부족한 상태.
소진된 것도 아니고, 든든하게 채워진 것도 아닌 그 사이.
그 사이에서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
오히려 완전히 방전되어 버렸다면 마음이 더 담담할지도 모른다.
“아, 끝났구나.”
그 사실 하나만 받아들이면 되니까.
그제야 비로소 다른 방법을 찾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선택지가 사라지면 마음이 단단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남은 것을 보는 연습을 한다.
소진된 95%를 붙잡고 초조해하기보다,
내게 남은 5%를 천천히, 알뜰하게 쓰는 마음.
다 써버리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때부터 새로 시작해야겠다고 차분히 마음을 고쳐 먹는 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에서,
종종 뜻밖의 시작이 조용히 켜지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