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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는 씨앗을 심는 것이었다. 작고 작은 씨앗을 흙에 살살 파 묻고 조심스레 물을 주고. 그 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도 지겹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언젠가 그 단단한 껍질을 벗기고서 뿅, 하고 연두빛 머리를 내밀 그 순간의 희열이 얼마나 짜릿한지 알고 있으니까.
참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자주 보고, 보살필 때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가 어느 순간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을 때. 꼭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싹이 튼다. 마치 나를 약올리는 것 처럼. 지켜보는 앞에서는 부끄러운 것인지, 아니면 놀래켜주고 싶은 마음인건지. 후자가 맞다면, 나에게 있어서 그 목적은 늘 적중하는 일이었다.
움이 트는 장면. 나는 왜인지 새싹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은지 모르겠다. 그 딱딱한 씨앗 속에 이렇게 야들야들하고 아기같은 잎이 어떻게 숨어있었을까. 그리고 이 여린 잎이 어떻게 태어났을까. 얼마나 이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끙끙 힘을 내었을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웅장해진다. 이렇게 손톱보다 작은 새싹도 싹을 틔우기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태어났는데, 하물며 나는. 조금만 힘들어도 그만두고 싶고, 불평만 가득 늘어놓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부끄러움도 함께.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 마음 속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어 보기로 한다. 매일 꾸준히 물을 주고, 햇볕도 맞게 해 주면서. 보이지 않더라도 조금씩 무언가 달라지겠지, 그러다보면 작고 여리지만 누구보다 강한 새싹이 봉긋 고개를 내밀며 나타나겠지. 그런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