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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운 Jan 27. 2024

나이

이왕에 먹는 거라면, 잘 -

at. Dalat , Vietnam. 달랏


어린 아이 시절에는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는 질문이 어렵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몇살이니? 몇살이요.

고민의 여지도 망설임의 여지도 없는 질문과 답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이를 묻는 질문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단순히 나이를 묻는 것이 아니라, 질문 속에 의미 부여를 하게 되어서이다.


당신은 몇살이며 그 나이에 맞는 어떤 것들을 갖추고 있죠?
당신은 나이에 알맞은 애티튜드와 경험치와 능숙함을 갖추고 있나요?


누가 그런 구구절절한 말을 붙여가며 질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 괜한 자격지심의 발로로
그렇게 나이에 대한 질문은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내 나이를 가늠하는 일이 물어보면 톡 튀어나오는 자동반사의 일처럼 되지 않기 시작했다. 한참을 곰곰히 생각하고, 손가락을 꼽아 보기도 하고 생년월일을 떠올려 보면서 아 맞다, 내 나이가 이랬었나? 헉.... 하는 알고리즘을 매년 반복하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그것이 노화의 현상 중의 하나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나이가 적다고 유치하고 가볍지 않으며, 나이가 많다고 진중하고 성숙하지도 않다. 나이는 세상에서 제일 먹기 쉬운 것중의 하나이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입 안으로 온 몸으로 쏙쏙 들어오고 쭉쭉 흡수되는 걸.

먹어도 먹어도 배도 안부르고 포만감도 없다.

희안하다.
하지만 나이를 잘 먹는 것은 다르다.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길을 걷다가, 지하철에서, 백화점에서, 카페 옆 테이블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면서. 너무나 많은 ‘나이만 먹은’ 사람들을 만난다. ‘나이를 잘 먹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만나는 빈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만큼 그 일이 어렵다는 것일 테다.

이왕에 먹는 나이라면, 한 살 한 살 꼭꼭 씹어 온 몸으로 잘 소화시킨 기운을 듬뿍 머금은
‘나이 잘 먹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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