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넘어가 준다
그러니까 엄청 황당한 일이 있었다. 시시콜콜하게 상황을 이야기하기엔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한 가구점 점장이 직원들과 본인의 의사소통 미흡으로 내가 사기로 한 식탁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린 거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에게 "의논"을 하러 연락한 게 아니라 "통보"를 하려고 연락을 했다. 실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해결을 하느냐 하는 게 중요한 거지. 같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의논을 하는 게 아니라 너가 물러나라 라는 식의 통보는 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게 했고 매장으로 한순간에 달려간 나는 난생처음으로 언성을 높여봤다
집에 와서 생각을 했다. 조금 더 품위 있게 우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을까. 나 이런 여자 아닌데. 억울하다. 억울해서 속이 뒤틀렸다. 하지만 곧 결론을 냈다. 처음부터 들을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조리 있는 말이 무슨 소용인가. 상대방의 품위가 있어야 내 품위도 만들어지는 건데.
뭔가 먹고 싶었다. 진이 빠질대로 빠졌다. 원래 사소한 문제가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법이다. 좋은 걸 먹고 싶지만 요리를 제대로 할 자신은 없다. 이럴 때는 라면에 해물을 넣어 끓이는 게 최고다. 단 라면의 면이 퍼지지 않고 해물이 질겨지지 않게 하는 건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스프를 먼저 넣고 물이 끓는 것을 지켜본 다음 해물을 넣고 물의 온도가 다시 올라가면 면을 넣는 센스는 필요하다. 음식을 만드는 건 , 특히 면요리는 어쨌든 불 조절이 결과에 많은 영향을 끼치잖아.
냉장고에서 죽어가던 미나리도 잔뜩 넣는다. 아귀는 수육을 하려고 사놨던 건데 손을 대지 못했다. 국물을 진하게 먹을까 해서 처음에는 머리가 붙어 있는 새우를 꺼냈다가, 그냥 편하게 먹고 싶어서 새우살로 바꾸었다. 관자, 관자 부산물. 갑오징어.아귀꼬리, 아귀살. 마구마구 넣는다. 왜 해산물은 맛있을까? 숨이 푹 죽은 미나리를 면과 아작아작 씹는다. 미나리의 향은 어렸을 때는 싫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말 상쾌하다. 고기와 싸 먹는 미나리도 맛있지만 이렇게 마구 집어넣어 숨이 푹 죽은 미나리를 매운 국물을 머금은 채 아작아작 씹는 것도 정말 맛이 있다. 부드러운 관자, 쫄깃한 관자 부산물을 씹으며 기분 나쁜 감정도 씹는다. 탱탱한 새우를 씹으며 내 마음도 탱탱하게 차오른다. 아귀살과 껍질을 씹으며 특별하다고 느낀다. 마지막 라면 국물을 마시며 내가 요리할 힘이 없을 때 도움을 받은 조미료에게 안도하며 기댄다.
그래. 내가 가진 좋은 의도들이 다 좋은 결과로 나타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날도 있다. 그럴 때는 조금 화끈하게, 조미료스럽게 해결을 해도 괜찮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서 품위 있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