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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연 May 06. 2020

세계일주 :: 통곡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떠난 여행

대학생 세계일주_310일간 19개국을 유랑하며 기록한 케케묵은 일기장


• 해당 글은 출판사 하모니북에서 출간된 <어느 여행자의 케케묵은 일기장>의 내용을 발췌한 글입니다.


01화 통곡에 대하여


2015년, 10월 1일, 구름 많음                                             





저마다 인생의 숱한 통곡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려진 기억이나 죽은 자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 혹은 죽을힘을 다한 노력이 거품처럼 증발해버린 허망감이나 무엇을 해도 되지 않는 저주받은 인생에 대한 한탄, 그리고 뼛속까지 곯아버리는 가난과 소외감, 그것도 아니라면 이유 모를 심연의 외로움도 있겠다. 모양과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궁극에는 고통이란 감정으로 묶이는 것을 통곡이라 부른다.     


살아가면서 통곡의 기억에 머물고 싶어 하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조금만 더듬어 보아도 괴로운 것, 낙엽 잎처럼 바스러지려는 기억에서 달아나고자 한다. 처음부터 겪지 않은 일인 양 도려내어 잊어버리기도, 원하는 조각에 덧붙여 왜곡시키기도, 덤덤해지기 위해 애써보기도, 끝내 포기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누구든지 벗어나고자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 통곡이다.      


그렇지만 먹고 자고 일하고, 삶에 휘청인 채로 살아가다 보면 차츰 잊히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 마음이 구겨진 종이짝처럼 흐물흐물해질 적에 불쑥 떠오르고는, 밥을 먹는 것조차 구역질이 나도록 일생을 흔들어 버리고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가끔이다. 대개는 살고자 하는 욕구, 오욕에 밀려나도 무방할 만큼 견딜 수 있어서 당장은 규격에 맞는 삶을 살아보기 위해 애써본다. 언젠가는 잊히겠지, 그러겠지, 하고.     


간혹 가끔이 아닌 사람도 있다. 자주 구역질이 나는 사람, 전생에 무슨 업보라도 있었는지 갖은 통곡을 어깨에 이고 태어난 사람, 혹은 태초에 그것을 짊어질 힘이 모자란 사람. 결국 생의 목표가 행복이 아니라 통곡으로부터의 해방인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오욕은 사치이다. 당장의 크나큰 숙명처럼, 통곡에서 달아날 방법을 찾아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생을 견딜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비행기가 떠오르는 동시에 덜컥 느껴지는 현생과 괴리된 감각, 공항 밖을 나서는 순간 이생(生)의 누구도 나를 모르는 듯한 나그네가 된 느낌. 즉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주도, 인생에서 실패한 낙오자도, 굶주린 소외자도 아닌 그저 여행자가 되어버리는 사실. 그처럼 속계로부터 해방되는 것만 같은 오감에 홀려 떠나는 건지도 모른다.     


나도 그러했다. 어쩌면 통곡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떠난 여행. 그러나 행복을 좇아 떠난 것은 아니었으며, 길 위에서 갖은 희로애락을 겪어내어 궁극에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아간 여행이었다.     






엄마가 말린다고 네가 안 갈 사람도 아니잖아.   



홀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선포한 밥상머리 앞에서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여느 다정다감한 엄마들처럼 호들갑을 떨며 가지 말라고 붙잡아주기를, 혹은 혼자 가면 위험하지 않느니, 얼마나 가는 거냐며 뭐라도 물어보길 바랐는데. 같은 지붕 아래에서 몸을 부대낀 세월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까닭일까. 엄마는 푸석푸석한 밥알처럼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그랬다. 무뚝뚝한 사람. 물어보는 말에 좀처럼 답이 없었으며 가끔은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데면데면했던 사람, 가끔은 내 생일이 언제인지, 무슨 대학에 지원했는지 잊어버리며 서럽토록 무심했던 사람, 그러다 어느 밤에는 돌연 연락을 끊고, 오랫동안 생사조차 기별하지 않은 사람이다. 어쩌면 숱한 통곡의 태초는 엄마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말없이 먹던 밥을 삼켰고, 나도 더 이상 여행에 대해 무어라 덧붙이지 않았다. 우리 모녀는 딱 그 정도 사이였다.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날은 시월 초입의 가을바람과 함께 찾아왔다. 그 새벽엔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뻑뻑한 눈이 떠져 버렸다. 긴장이 되었던 건지 혹은 설레었던 건지, 눈을 붙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결국 잠에 들지 못한 까닭이었다. 떠날 채비를 마치고 배낭을 들 때는 억지로 떠나게 된 사람처럼 천천히, 그리고 엉거주춤한 몸짓으로 엉겨 메기도 했다. 혹시 벌써부터 여행이 싫어진 걸까. 그게 아니면 낯선 땅을 외따로이 부유하게 될 미래가 두려워서 그런 걸까. 복잡한 심경으로 현관문에 다가섰다. 문고리를 열기 전엔 엄마와 작별의 포옹을 나눴다. 귀국 일을 따로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얼굴이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으나 우리는 담백하게 인사했다. 잘 갔다 와, 네. 그게 전부였다.     


아직 단풍도 물들지 않은 가을이라지만 바깥공기는 꽤나 서늘했다. 온몸에 소름이라도 돋을세라 바람막이의 지퍼를 끝까지 올린 채로 걸어가야 했다. 아파트 출구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언제 다시 돌아오게 될지 모르는 우리 집을 눈에 두고두고 담아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에서 어딘가 멀리 떠나버리는 주인공처럼 말이다. 곧 발걸음을 멈추고, 어느 서사 속 등장인물이라도 된 것마냥 처연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건물 중간쯤에 있는 우리 집 베란다로 시선을 좇아 보았다.     


그런데 굳게 닫혀있어야 할 창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벌려진 틈 사이에는 누군가 난간을 잡고 서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였다. 조금 전 그토록 싱겁게 인사했으면서, 나를 불러보지도 않을 거면서, 부르지 않고서야 내가 돌아보리란 보장도 없으면서, 그녀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나는 태연한 척 손을 흔들었고, 엄마도 손을 들어 답례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다시 뒤돌아 걸어가는데, 돌연 목구멍에서 먹먹한 것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베란다에 서 있을 거라곤 조금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현관문을 닫고 출구에 다다르기까지 나를 지켜본 시간이 의미하는 바는, 지금껏 내가 믿어온 세계와 너무나 다른 궤도를 그리고 있었던 까닭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엄마는 딸에게 무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타인처럼 무심하거나 원수처럼 미워한 것도 아니었다. 모녀 사이에 오래토록 불었던 찬바람과 견고하게 쌓인 장벽은 모두 떨어진 세월의 틈에서 자란 오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의미는 오직 하나였다. 엄마는 줄곧 떠나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끝내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 별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제야 수혈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눈물이 터졌다. 어떤 이에겐 지극히 당연한 사랑이 나에게만 결여되었다고 원망해왔던 지난날의 오해와의 화해, 결국엔 안도의 눈물이었다. 도무지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현실로부터 멀리 달아난 여행자가 되어야 통곡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누군가의 사랑받는 딸이 되어야만 비로소 그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다니.      


끝내 드는 생각은 그랬다. 혼자서는 무엇을 해도 이생(生)을 지탱할 수 없는 것이 아닌지.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받는 자식으로, 연인으로, 친구로서 복락을 느껴야만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아닌지.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리 달음박질을 쳐도 끝내는 통곡, 즉 다시금 소리 높여 울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광막한 시간 동안 나는 어떤 여행을 하고 돌아와야 할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바야흐로 여행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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