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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연 May 06. 2020

세계일주 :: 인도 여행의 낭만

대학생 세계일주_310일간 19개국을 유랑하며 기록한 케케묵은 일기장

02 인도 기차에 대하여

10월 어느 날, 흐리거나 맑거나.


• 해당 글은 출판사 '하모니북'에서 출간된 <어느 여행자의 케케묵은 일기장, 김다연>의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짜이 짜이 짜이 짜이 짜이 짜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보온 통, 그리고 보스락거리는 종이컵 뭉치를 이고 가는 아저씨가 속사포처럼 떠들어댄다. 대충 인도의 국민차, 짜이(Chai)를 판다는 말이다. 얼마나 노련한 도붓장수인지 휘청거리는 기차 안에서도 꼿꼿하게 걸어간다. 그가 멀리라도 가버릴라, 건너편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다급하게 짜이를 부른다. 그는 하나 건네받다 말고 내게,     



“You want Chai(짜이티 먹을래)?”     



나는 고개를 젓는다.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인도에선 모르는 사람, 아무리 친분이 생긴 사람이라도 주는 음식은 먹지 말라는 암묵적인 원칙이 있다. 눈앞에서 갓 따라주는 짜이라서 별달리 의심할 여지도 없지만, 오래된 습관처럼 거절해본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왔다. 도둑이라도 들세라 보조 배낭을 앞에 메고 가는 일이 퍽 불편할 더러, 선로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재래식 구멍이 아직은 어색해서 대개는 참을 때까지 참다 가는 편이다. 돌아온 자리에는 모르는 인도인 너덧 명이 앉아있다. 침대칸은 하나의 자리에 세 명이 앉을 여유가 있다고는 하나, 다섯 명은 쉽지 않다. 나는 눈살을 찌푸린다. 주인이 돌아왔는데도 아무런 의중도 묻지 않고 궁둥이를 붙이고 있는 사람들이라니. 그러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티 없이 맑은 눈동자로 찡긋 인사를 보내는데, 도리어 웃음이 나오면 나왔지 화내거나 자리에서 그만 나와 달라고 요구할 재간은 없다. 나는 결국 마지못해 싱긋 웃다가 앉는다.      



그들은 때때로 뭐가 그리 궁금한지, 나에 대해 이래저래 묻기도 한다. 북한인이냐 남한인이냐, 인도는 몇 번째이냐, 부모님이 걱정 안 하냐……. 앞뒤 양옆으로 열댓 명은 되는 유달리 하얀 흰자위를 가진 인도인들이 쳐다보며 물어보는 광경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관심이 애정처럼 느껴져서 의기양양해지기도 하고, 뭐 그런 편이다.     



곧 내릴 때가 되었다. 부피가 큰 침낭을 동글동글 말고 있으면 희귀한 물건이라도 본 양 모두가 주목한다. 애써 신경 쓰지 않는 척, 내릴 채비를 하고 앉아본다. 기차에는 안내방송이 없다. 눈치껏 내려야 하는데, 언제 내려야 하는지 물어보기가 무섭게 너도 나도 알려주겠다고 한다. 꾸깃꾸깃한 종이에 적힌 행선지를 보며 무어라 토론하는 사람들. 보아하니 좀 전에 짜이를 건네주려 했던 할아버지가 가장 열성적이다. 여하튼 그들은 합의를 보았는지 지금이 내려야 할 때라고 자못 비장하게 말한다. 그리고는 작별 인사를 하는 일도 빼먹지 않는다. 분명 플랫폼에 홀몸으로 내렸지만 든든한 느낌마저 든다. 나는 한동안 정차해 있는 기차를 눈에 농농하게 담아보기도, 마주친 얼굴을 하나둘 떠올리며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한다.



아마도 인도의 모든 낭만은 기차에서 시작되는 것만 같다.




 인도를 찾는 배낭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기차 SL 복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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