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삶에의 심오한 교훈

과정으로서의 삶과 개인의 경험으로서의 삶

by 실버볼

쿠바의 한 노인, 직업은 어부이지만, 84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한 상태다. 이번엔 꼭 물고기를 잡으리라 바다로 나선다. 바다에서 만난 거대한 청새치, 이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그야말로 악전고투, 몸은 성한 곳이 없다. 거대한 청새치가 낚싯줄을 끊고 도망가지 않길 바랄 뿐, 청새치를 따라 며칠을 항해한다. 잡아야만 할 대상으로 여기던 청새치는 어느새 노인에게는 형제이자 친구로 느껴지고, 형제와 씨름을 하면서 물고기를 잡아내고야 만다. 배보다 큰 청새치를 잡아들고 돌아가는 길, 상어 떼가 급습한다. 청새치의 상처에서 난 피냄새를 맡고 모여든 것이다. 노인은 청새치를 지키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그러나 중과부적, 청새치는 어느새 머리와 뼈만 남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노인, 그의 손에 남은 것은 없지만, 소년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내일을 기약하면서 잠에 든다.


박진감 넘치는 서사와 배에 탄 듯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필력이야 번역판(민음사)으로 보았기에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과정의로서의 삶이 어떤 것일지 간접경험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노인은 우리, 현대인으로 볼 수 있고, 거대한 청새치는 우리의 원대한 꿈이자 목표(행복)이다. 상어는 우리의 목표를 해치는 적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시간으로 보고 싶다. 우리는 성취하고자 살아간다. 이룬 게 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고, 지쳐갈 즈음에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 같은 목표가 다가온다. 꼭 이루고 싶다.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한다. 가끔은 밉지만, 해내야 하고, 해낸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목표기에 애착은 더해진다. 드디어 이루어낸다. 그런데, 이루어내는 순간, 목표달성으로 인한 도파민 분비는 감소한다. 기대로 급상승한 도파민 농도가 떨어지고, 시간(상어)이 지나면서 흥분과 목표달성시의 행복도 감소한다. 우리에게는 마지막 뼈(해냈다는 막연한 감정)만 남아 있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그간의 인생이 헛된 것은 아니다. 거대한 물고기를 잡았다는 사실 자체는 나의 경험으로 남아 있다. 물고기가 거대할수록 쉽게 상어에 뺏긴다. 하지만 우리가 원했던 것은 물고기 자체가 아니라 물고기와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닐지 되물어 봐야 한다. 물고기만 원한다면, 우리는 안전하게 간수할 수 있는 작은 물고기만 있으면 된다. 아니, 수십 년을 살아올 필요가 없다. 죽기 직전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물고기의 양만 재면 되기에, 태어나자마자 죽더라도 가진 물고기가 크다면 의미 있는 인생이 되어버릴 수 있다. 물론 이런 인생을 우린 꿈꾸는 게 아니다. 물고기를 잡은 과정은 우리 기억과 세포에 녹아 있다. 운이 좋으면 마지막 남은 뼈처럼 우리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러면 된 것이다. 거대한 청새치로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꿈을 꾸었으니 된 것이리라.


마지막 장면에서, 관광객은 그 뼈를 상어의 뼈로 오해한다. 다른 사람은 나에게 남은 기억과 뼈의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하지만 노인과 소년은 그 의미를 알고, 기억하면서 잠이 든다. 즉, 하루하루를 살아온 과정을 오롯이 아는 것은 나뿐이다. 남들이 아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물론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정, 꿈을 이루지만, 다시 무언가를 좇아야만 할 것 같은 시대... <노인과 바다>는 꿈을 이루면서도 허무할 수 있는 우리에게 실망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과 성취감이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지, 물질적 결과가 풍요를 주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날 때, 풍요로운 인생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눈감는 순간 내 만족감이지, 죽고 난 이후, 나에 대한 뭇사람들의 평가는 아니다.


삶이 어떤 것일지, 우리의 마지막은 어때야 할지, 생각하게 해주는 아침이다.


작가의 이전글어떻게 균형을 유지할지 고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