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만지다

도시농부 일지(1)

by 최선화

3월 22일(토)


나뭇가지 끝에 눈이 돋았다. 나무는 봄이 오고 있음을 세상에 큰 소리로 떠들지 않았다. 조심스레 나무 끝에 씨눈으로 알린다. 땅은 봄의 소리를 군데군데 푸른색을 띄우며 알린다. 땅이 녹았고 땅 속에 기운이 맴돌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들풀이 잡초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이름을 가린 채 존재를 과시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크다 보니 흙을 밟고 만져본 일이 많지는 않다. 얼마나 되려나.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깔린 보도블록사이, 그 틈새에 올라온 작은 싹들을 긴 막대기로 파 꺼내면서 맡았던 흙냄새가 기억난다. 거뭇한 고동색에 축축한 흙을 보며 흙을 파고 파면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궁금했었다. 초등학교 입학도 안 했던 나이였지만 흙이 품고 있던 이끼를 보며 촉촉한데도 포송포송한 느낌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때, 이끼도 이끼를 품은 흙도 숨 쉬고 있었구나. 이제야 흙이 살아있음을 안다.


땅이 모든 것을 품겠다고 준비하는 지금, 땅이 더 넉넉한 마음을 가지도록 나는 땅에 퇴비를 뿌렸다. 20Kg 비료는 계분 90%, 톱밥 5%, 버섯배지 5%를 담고 있는 '부숙유기질비료(가축분퇴비)'이다. 퇴비 봉지를 열자 쿰쿰한 냄새가 쑤욱 올라온다. 냄새만으로도 땅이 더 건강해질 것만 같다.


땅에 퇴비를 듬뿍 흩뿌리고 삽을 땅 깊이 넣은 후 올려낸다. 땅을 뒤엎어 퇴비와 흙을 섞는다. 얼핏 보면 작은 땅인데, 삽 한번 넣으니, 어느 세월에 저 끝까지 땅을 가나...라는 생각이 스친다. 남편이 삽을 이용해 땅을 뒤엎으면, 나는 호미로 흙을 다듬는다. 단단한 흙이 부드러워진다. 흙 속에 있던 지렁이가 밖으로 나와 인사한다. 한 해 흙 속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니길 부탁하며 나도 지렁이에게 인사한다.


호미질을 하다 보니 작년에 이 땅을 맡았던 사람이 파농사를 지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새 파 모종 하나가 생명을 뽐낸다. 잡초를 걷어내야 한다고 옆에서 말해준다. 땅 곳곳에 자리한 푸릇한 것들을 뿌리째 뽑아내 농사짓기를 준비한다.


옆에서는 언니들이 땅을 갈며 만난 냉이를 마주하고 있다. 냉이를 키워낸 땅에게 고마워하고 추운 날 땅에서 잘 자라준 냉이에게 감탄하는, 감사를 담은 그녀들의 목소리가 내 귀에 맴돈다.

살살 살살... 흙에게, 뿌리에게, 자연을 조심스레 아기 대하듯 하는 언니들의 모습 속에서 생명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다.


퇴비를 받아들인 땅은 일주일 동안 숙성하며 건강해질 것이다. 땅을 갈고, 흙을 만지고 다듬으며 올 농사를 위한 기초작업을 마무리한다. 날씨만 도와준다면 다음 주에는 이곳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게 되겠지. 흙을 만지며 생명의 기운을 땅과 내가 서로 나누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곳에 또 다른 생명이 땅의 기운과 나의 기운을 받고 자라겠지. 초록빛으로 물들을 땅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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