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 일지(2)
3월 29일(토)
아침에 맑은 하늘을 보며, 오늘 씨앗을 뿌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일주일 전 퇴비를 뿌리고 갈았던 밭은 7일이라는 시간 동안 충분히 숙성되었으리라. 밭으로 가려고 모자와 장갑, 물 등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버스 밖을 보니, 눈발이 내린다. 아침엔 맑았는데... 밭 도착을 앞두고는 폭설이 내린다. 이런 이런... 버스에서 내려 뚜벅뚜벅 걸어 올라간다.
시농제에 참여한 언니들이 저 멀리 있다. 언니들 덕에 겁도 없이 흙을 만지는 초보농부가 되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언니들은 근처 경애언니네 가서 차를 마신다고 한다. 나도 슬쩍 붙는다.
경애 언니가 내어준 따뜻한 커피와 차, 간식으로 기운을 받고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며 우리는 밭으로 올라간다. 눈이 녹아 젖은 땅은 갓 세수를 한 듯 촉촉하다. 강매언니가 준비한 씨앗이 우리 앞에 놓인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땅에 씨 뿌리기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 지난주에 다졌던 땅을 다시 부드럽게 매만진다. 아이 얼굴을 만지듯 언니들의 손길이 부드럽다. 나도 호미를 들고 나에게 주어진 땅에 손길을 댄다. 얼굴에 묻은 잡티를 없애듯 호미로 잡초를 캐어 저 멀리 쌓아둔다. 갈퀴로 땅을 평평하게 다듬는다. 한쪽 끝에서부터 슬슬 씨앗을 뿌리기 위해 그리 깊지 않은 고랑을 길게 만든다. 이 고랑 속으로 참깨보다 더 작은 씨앗을 흩뿌린 후 손으로 흙을 덮으면 되리라.
열무 씨를 받았다. 토종 조선 열무 씨앗이 이렇게나 예뻤나. 처음 보는 씨앗이 사파이어보다 빛난다. 작디작은 그 아이를 손위에 조금 올리고 손가락으로 짚어 흙에 조심히 놓아둔다. 바람에 날아갈까 봐 한 줄 씨앗을 넣으면 빨리 흙을 덮어준다. 열무는 두 줄 씨앗을 뿌렸다.
다음으로 당근 씨를 심는다. 이 작은 씨앗이 당근으로 변하다니, 신기한 것 투성이다. 당근 씨 또한 처음 보았다. 잿빛의 길쭉한 모양이다. 씨앗 모양처럼 당근도 길게 길게 흙속으로 자라겠지. 흙 속에는 주황색 당근이 손톱만 하다가 새끼손가락만 하다가 조금 더 살이 붙으며 두꺼워지고 조금 더 키도 키우며 자라겠지. 땅 위에는 당근 잎이 연하게 올라오며 나도 있다고 존재를 과시하겠지. 찾아보니 당근 잎은 백내장을 예방하고 유방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당근보다 당근잎이 더 기다려진다.
비트 씨도 받았다. 정말 작다. 흙에 놓으면 뿌렸는지 안 뿌렸는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당근을 심은 다음 줄에 얇게 골을 파고 씨를 솔솔 심는다. 씨가 한 곳에 모이지 않게 손으로 슬슬 만져준다. 씨를 심고 흙을 덮는다. 벌써 마음은 비트잎으로 쌈을 싸 먹고 있다. 샐러드에 비트잎을 넣고 있다. 이런 기대감 만으로도 충만하다. 소쿠리 가득 수확한 듯하다.
땅 가장자리로 얼룩 강남콩을 하나하나 심어둔다. 자주 보았던 얼룩 강남콩 마저 씨앗으로 보니 참으로 예쁘다.
씨앗이 이렇게 예쁜 걸 처음 알았다. 세상을 오십 년이나 살았는데, 아직 처음 보고 처음 듣고 처음 만지는 것들 투성이다. '처음'이 잦다 보니 어린아이가 된 듯하다. 흙 위에서는 아이가 된다. 나만이 아니다. 옆으로 눈을 돌리니 언니들 또한 아이처럼 신나있다. 흙 위에서는 모두 아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