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 일지(3)
4월 1일(화)
오늘 감자를 심으러 간다는 말에, 지인은 나희덕 시인의 <배추의 마음>이라는 시를 권했다. "선화샘이 이런 마음으로 감자를 심을 것 같아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배추의 마음
- 나희덕
배추에게도 마음이 있나 보다.
씨앗 뿌리고 농약 없이 키우려니
하도 자라지 않아
가을이 되어도 헛일일 것 같더니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늦가을 배추포기 묶어 주며 보니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찾다.
-혹시 배추벌레 한 마리
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꼭 동여매지도 못하는 사람 마음이나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 보다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1994)
재인언니가 우리를 대표해 3월 말에 인터넷으로 씨감자를 주문했다. 씨감자가 도착하자 7명이서 씨감자를 나누었다. 나는 받아온 씨감자를 베란다에 펼쳤다. 싹이 제법 나와 있어 곧 심어도 되겠구나 싶었다. 감자 심기 전에 감자를 잘라야 하는데, 생전 처음 감자를 심는 나를 비롯한 언니들은 강매언니에게 어떻게 감자를 소분하는지 배웠다. 감자심기 전날 감자를 자르고 자른 표면에 전분이 올라와 마르도록 바람이 드는 그늘진 베란다에 널어두었다. 감자를 자르기 위해 칼은 열탕소독하고 찬물로 식혀두었다. 작은 감자는 하나를 통으로 심어도 되어 작은 감자 몇 개는 통감자인 채로 두었다.
다음날, 감자 심는 날이다. 오후 4시쯤 밭에서 언니들을 만나기로 했다. 전날 썰어둔 감자가 하루가 지나니 겉에 하얗게 전분이 올라와 있다. 감자를 가지고 슬슬 밭으로 향한다. 먼저 밭에 도착한 강매언니는 밭에서 봄나물을 캐고 있다. 나보다 몇 발자국 앞서 밭으로 올라간 경복언니는 밭 옆에 돗자리를 깔고 감자는 물론이고 다른 연장도 펼친다. 강매언니가 나무를 태워 만든 재를 꺼낸다. 각자 나누었던 감자가 가방에서 나온다. 감자 자른 표면에 나무재를 묻힌다. 심기 전 자른 표면에 나무재를 발라 심어야 땅속에서 감자가 병들지 않고 잘 자란다고 한다.
감자는 남부지방은 3월 초순, 중부지방은 3월 중순에서 하순경 주로 심는다. 감자싹은 1~2cm 나온 게 심기에 적절하다. 싹이 나있는 상태로 심어야 병충해야 잘 견딘다. 감자는 90일~100일 정도 재배해 수확한다. 감자는 한 줄 심기를 하는데, 10~15 센티미터의 깊이로, 25~30센티미터 간격으로 심는다. 싹이 위로 향하도록 심는다. 감자줄기가 15센티정도 나왔을 때 줄기 두세 개를 남기고 나머지를 잘라내야 적당히 굵은 감자가 나온다.
재를 묻힌 감자를 가지고 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 줄로 심었다. 땅이 작다 보니 나는 둔턱을 만들지 않고 10센티미터 정도의 깊이에 설명서에 나오는 25센티미터의 적당한 간격으로 감자를 한 줄 심기 한다. 옆 밭에서는 경복언니가 땅을 파면, 그 속에 강매 언니가 감자를 넣고 심는다. 한 줄 한 줄 간격도 잘 맞고 깊이도 깊어 내 밭의 감자보다 언니들 밭의 감자가 더 잘 클 것 같다. 경복언니가 내놓은 땅의 구멍을 보자니 그 속에서 두더지가 머리를 내밀 것 같다. 어느 구멍으로 두더지 머리가 나올지 모르지만 두 여인이 긴장하며 구멍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이어서 만화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감자를 다 심고 물을 듬뿍 주고 있자니 재인 언니, 경애 언니, 명희 언니가 올라온다. 다시 그들의 감자가 땅 속으로 들어갈 때다.
땅 속에서 나온 감자가 감자를 낳기 위해 다시 땅으로 들어갔다. 약 100일 후면 씨감자 밑에 주렁주렁 열릴 감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마치 탯줄로 연결된 엄마와 아기의 모습 같다. 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는 감자가 위대하다. 내 손으로 흙을 파고 그 속에 감자를 넣고 흙을 덮으며 말을 건넨다. 너는 대단하다고, 너는 잘 키워낼 수 있을 거라고. 세상 맛을 알아버린 감자가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기까지, 그 마음 내가 안다고, 그 자체로 나는 너를 경외한다고. 그리고 나희덕 시인의 말을 덧붙인다.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잘 자라 기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