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농부 일지(4)
2025.4.7.(월)
지난 주말에 종로꽃시장에서 여러 종류의 모종을 사 왔다. 고추, 깻잎, 대파, 상추, 바질까지. 방울토마토와 가지, 오이도 사고 싶었는데, 이른 지 아직 시장에 나와있지 않았다. 나는 모종 2만 원어치를 사서 양손에 들고 버스를 타면서 부모님과 함께 밭에 갈 생각에 으쓱했다.
다음 날 아빠와 엄마를 모시고 밭에 가서 심을 계획이었다. 늘 다니던 종로에 꽃시 장이 있다는 것을 작은 밭농사를 지으며 알게 되었다. 동대문과 종로 6가 사이에 있는 종로 꽃시장은 길가에 "종로 꽃 시장 - 도심 속의 정원"이라는 표지가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표지판 뒤로 길을 따라 노점 꽃 가게들이 있는데, 화초는 물론이고 다육이, 각종 모종, 흙과 모래, 비료 등 부자재도 판다. 좀 쌀쌀하지만 봄이라고 들뜬 마음은 꽃 시장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이 꽃 저 꽃, 이 모종 저 모종을 보고 있노라면 모두 가지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 설레는 마음을 살짝만 알아주고 잠재우지 않으면 내 몸이 힘들어지기 일쑤다. 2만 원어치 구입한 것은 내 마음을 잠재우는 수많은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월요일, 엄마아빠를 모시고 밭으로 향했다. 근처에 주차를 하고 준비한 모종과 모자와 장갑 등을 챙겨 슬슬 걸어 올라간다. 차 트렁크에서 모종을 꺼내니, 엄마와 아빠는 소꿉놀이하냐고 묻는다. 시골에서 논농사 밭농사 지워보신 분들이라 두 손에 들만한 정도의 모종이 우습기만 한가 보다.
나는 밭에 몇 번 다녀갔다고 밭으로 가는 길이 멀지 않은 느낌인데, 초행길인 엄마 아빠는 주차한 곳에서 밭까지 좀 멀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집들로 가득한 골목을 지나니 북한산 둘레길 앞자락에 도착한다. 우리 구 사람들의 밭들이 오밀조밀 각자의 팻말을 꼽고 놓여 있다. 우리 밭은 거의 끝 부분에 있다. 거의 끝까지 올라가 엄마, 아빠를 바라보며 나는 말한다.
"엄마, 여기가 우리 밭이야. 여기에 모종 심으면 되겠다. "
"여기?, 생각보다 넓네!"
엄마, 아빠는 도착하자마자 다른 건 보지도 않고 호미를 들더니 우리 밭 가장자리에 자라고 있는 잡초를 제거하기 시작한다. 엄마의 손놀림이 다르다. 서투르지 않은 전문가의 포스~! 어린 시절 지겹도록 일해서 밭일이라면 치를 떨 텐데 이미 몸에 녹아있는 밭농사 저력은 호미를 드는 모습만으로도 자연스레 묻어 나온다.
저쪽으로 아빠의 호미질을 본다. 음.... 이건 뭐지? 아빠의 호미질이 서투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옆에 있는 남편을 보니, 남편도 내 생각과 같은 듯하다. 내가 작은 텃밭을 분양받아 밭농사를 짓겠다고 했더니, 아빠는 나에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으로 자신감 있게 말했었다. '애(농작물)들을 아기 대하듯 해야 한다.', '비 오면 비 와서 들여다봐야 하고, 해나면 해나서 들여다봐야 한다.', '어떤 것은 심기만 하면 되지만, 어떤 것은 손이 많이 가니 잘 봐야 한다.' 나에게 끝없이 "~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셨었다. 아빠의 호미질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마도 아빠는 젊은 시절 고향에서 밭농사가 아니라 논농사를 지었나 보다'라고.
두 분 덕분에 2만 원어치 모종은 몇 분 안 되어 금세 심어졌다. 두 분의 손질로 굳은 땅은 부드러워졌고 잡초도 제거되었다. 아빠와 남편은 새로 심은 모종에 물을 듬뿍 주었다. 쑥쑥 힘내서 잘 자라라고 쓰담쓰담 좋은 말도 건네었다. 지지난주 열무, 당근, 비트 씨앗을 심은 자리와 지난주에 감자를 심은 자리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조바심이 나지만 땅 속에서는 땅의 기운을, 땅 위에서는 햇살의 에너지와 비의 촉촉함을 받으며 힘을 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팔순의 아빠와 칠순이 넘은 엄마와의 텃밭 데이트로 나는 알게 되었다. 엄마는 고수였고, 아빠는 하수였다는 것을...